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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전 유엔서 위안부 아픔 처음 알린 정진성 서울대 교수

과거 덮는다고 덮어지나요? 우리 주위 불합리한 차별 많죠
22년전 유엔서 위안부 아픔 처음 알린 정진성 서울대 교수

기사입력 2014.11.04 17:32:47
최종수정 2014.11.04 17:40:53


1992년 처음으로 유엔 인권소위원회에서 한국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을 전 세계에 알렸을 때 제네바를 함께 방문한 정진성 당시 덕성여대 교수와 고 황금자 할머니, 이효재, 신혜수 선생은 국내외에서 정반대의 반응에 부딪혀야만 했다.

유엔에서는 전 세계 기자들, 비정부기구(NGO) 대표들, 심지어 일부 정상들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폭발적인 관심과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하지만 정작 한국 내부의 반응은 너무나 부정적이었다. 한국사의 부끄러운 과거를 들춰낸다며 따가운 눈총을 주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정 교수가 알던 한 기자는 당시 기사에서 정 교수의 이름을 빼주기까지 했다.

지금 보면 당연히 환호받아야 할 일에 비난을 받았던 당시 기분이 얼마나 참담했을까 싶어 관악산 서울대 캠퍼스 내 인권센터에서 만난 정진성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에게 물었더니 정 교수는 의외로 시원하게 웃으며 답했다.

“하, 참 웃긴다 생각했어요. 창피하다는 얘기 많이 들었는데 전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과거를 덮는다고 덮어지는 게 아니니까요. 우리 사회가 더 발전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지금 많이 발전했잖아요?”

이런 당당함과 뚝심이 한국 여성 인권을 발전시키는 힘이 됐다. 1990년대 초부터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참여해 위안부 문제를 전 세계에 알린 그는 이후 전 세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유엔결의안 채택을 이뤄냈다.

2004년 우리나라 민간인 중 최초로 유엔 인권소위원회 대표로 선출됐고 인권특별보고관까지 역임한 그는 전 세계 차별받는 여성들, 특히 카스트제도하에서 처참하게 생활해야 했던 최하층계급 여성들의 인권을 위해 앞장섰다. 2005년 국내에 유엔인권정책센터를 설립한 그는 외국의 우수한 인권 정책을 국내에 소개하는 한편 베트남·필리핀·몽골 등에서 온 결혼 이주 여성의 인권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두지휘했다.

이런 성과들을 인정받은 그는 올해 삼성행복대상 여성선도상을, 지난해에는 대한민국 인권상 근정훈장을 받았다.

학창 시절부터 정 교수는 인권에 관심이 컸다. 그는 “학교 다닐 때 교실 자리배치를 성적순으로 했는데, 꼴찌 쪽으로 가 있는 아이들은 얼마나 기분이 나쁠까 생각하면 이건 불합리하다고 느꼈다”고 회상했다.

어릴 적 아들보다 딸이 차별받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자라면서는 자연스럽게 더 힘이 없는 여성의 권리에 관심을 갖게 됐고, 그래서 서울대 사회학과 진학을 선택하게 됐다.

정 교수는 “대학원에 진학하려고 했더니 왜 남자 자리를 뺏으려고 하느냐는 소리까지 들었다”며 “그렇게 여자 연구자들이 드물고 여성사 연구가 약한 상황에서 나 말고는 아무도 여성사를 쓰는 사람이 없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인권에 대해 정 교수는 ‘존중과 책임’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어떤 사람들은 인권 관련 일을 한다고 하면 권리만 주장한다고 생각해 싫어하기도 하는데 인권은 남을 존중하고, 그만큼 책임 있게 행동하는 것”이라며 “자기도 잘 해야 권리도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김제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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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링크: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4&no=1387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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