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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숙/ [인문학에 던지는 12가지 질문] 여성학은 '성폭력'을 통해 무엇을 말해왔는가
경향신문(2012.6.29)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6291952385&code=960205&s_code=ac148

ㆍ여성학의 본질로 성폭력 비판적 성찰 … 아직도 많은 난관

인문학과의 고즈넉한 만남을 통해 마음의 평정을 얻고 삶의 자양분을 보충하고자 기대한 독자들이라면, ‘성폭력’을 화두로 풀어가는 여성학의 이야기가 다소 어색한 모양새로 비쳐질런지도 모른다. 여성학은 역사가 길지 않은 신생 학문인 까닭에 대중과의 접촉면이 상대적으로 넓지 않았고, 적나라한 폭력의 실상과 대면하는 것이라면 언론의 사회면에 차고 넘치는 각종 엽기적인 범죄 사건들을 일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지 폭력의 잔혹함이나 범죄성의 여부를 논하는 것은 이 글의 의도를 벗어나는 일이다. 누구나 성폭력이 나쁘다고 말하며 이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성폭력범죄를 처벌하고 가정폭력을 방지하며 성희롱의 피해를 구제할 수 있는 법제도적 장치들도 마련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별의 차이를 둘러싸고 발생하는 각종 폭력의 피해가 여성에게 집중되는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더욱이 최근 수원에서 연이어 발생한 두 가지 사건은 폭력 피해 여성들의 절박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신고를 묵살한 경찰의 무심한 대응이 얼마나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가를 안타깝게 웅변한다.

여성에 대한 폭력의 역사와 저항의 자취

“군대내 성노예제 같은 공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성폭력은 피해 규모와 내용 면에서 가장 심각하고 참혹한 것으로,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켜 왔다. 신상숙씨가 최근 서울 성산동에 문을 연 전쟁과여성인권 박물관을 찾았다. 사진작가 박재찬

여성에 대한 폭력의 역사는 실로 장구하고 그 오랜 세월 동안 여성들이 겪은 폭력의 피해는 가족의 명예와 여성이 지켜야 할 정조의 문제로 사사화되어 공론의 대상조차 되기 어려웠다. 과거 ‘박탈된 자’들의 처소로 폄하되었던 사적인 영역은 근대사회에 들어와 ‘프라이버시’로 표상되는 자유의 특권적인 영역으로 변모하였고, 여성들은 시민권을 향한 힘겨운 행진을 부단히 지속해 왔다. 그러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보장한 근대국가의 약속은 바로 사적인 자유의 이름으로 가족의 문턱에서 멈추어 버렸으며, 공공생활의 장으로 어렵게 진출한 여성들은 정치적 배제 뿐만 아니라 성희롱을 비롯한 또 다른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18세기 프랑스에서 ‘공적 여성(femme publique)’의 의미가 누구도 사유하지 않았기에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여성이란 뜻으로 새겨졌듯이, 산업화 시기에 우리 사회에서 통용된 ‘직업 여성’이란 호칭이 접객 업소의 종사자와 등치되었던 것은 가정의 테두리를 벗어나 활동하는 여성들을 ‘무질서’의 징후로 보는 따가운 시선의 산물이다.

여성해방운동과 함께 도래한 페미니즘의 두 번째 물결과 “사적인 것은 정치적이다(The personal is political)”라는 그 해방의 구호가 여성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각성된 인식의 지평에서 1970년대 초부터 미국과 영국 등지에서는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움직임이 개시되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에 이러한 움직임이 처음으로 가시화되었으며, 성폭력특별법 제정운동을 계기로 1990년대 전체를 통해 가정폭력방지법 제정을 촉구하고 성희롱 소송을 지원하는 여성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여성에 대한 폭력’과 ‘성폭력’ 개념

1993년에 UN이 채택한 ‘여성에 대한 폭력 철폐 선언’은 각국 여성들의 절박한 외침에 대한 응답이었다. 그 선언의 제1조는 ‘여성에 대한 폭력(Violence Against Women)’을 “사적, 공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여성에 대한 신체적, 성적, 심리적 해악을 비롯하여 여성에게 고통을 주거나 위협하는 강제와 자유의 일반적 박탈 등 성별에 기반을 둔 모든 폭력 행위”로 폭넓게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생물학적 성차(sex)와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성별(gender)을 구분하여 사용하는 관행이 아직 확산되기 이전인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성폭력(sexual violence)’은 요즘처럼 섹슈얼리티와 직접 연관된 성적인 폭력 뿐만 아니라 성별에 기반을 둔 여성에 대한 폭력 일반을 뜻하는 넓은 의미의 개념으로 사용되곤 하였다.

여성주의적 사유 안에서 폭력의 개별적인 행태나 특성의 차이를 넘어서는 포괄적인 의미의 성폭력 개념이 구성되고 설득력을 지닐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폭력의 의미 이해와 관련하여 피해자의 관점과 피해 경험의 맥락이 중시되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여성학자인 켈리(Liz Kelly)는 피해자들을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구타를 당한 여성들은 강간을 당하거나 강요에 의해 성관계를 가졌으며, 근친강간이나 학대를 겪은 여성은 신체적 폭력을 또한 경험”하는 등, 그 피해가 어느 하나의 폭력에 국한되지 않음을 발견하였다. 켈리가 여성들이 생애사에 걸쳐 겪게 되는 다양한 피해 경험을 ‘성폭력의 연속선(continuum of sexual violence)’으로 포착하고자 한 까닭은 이 때문이다.

오늘날의 ‘성폭력’ 개념은 법제화의 영향 속에서 섹슈얼리티와 직접 연관된 성적인 폭력을 뜻하는 것으로 그 의미가 정착되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성폭력이 ‘강간’이나 ‘추행’과 같이 단지 행위의 양태를 지칭하는 용어라기보다, 행위의 의미를 해석하고 문제를 규정하는 여성주의적인 해석틀에 관한 주장을 함축한다는 점이다.

‘성폭력’에 담긴 여성학의 메시지

그간 성폭력과 관련된 여성운동의 행동주의적 실천은 여성학의 비판적 지식 생산과 맞물리면서 적지 않은 사회변화를 이끌어냈다. 피해 여성의 생존과 치유를 돕는 여성주의 상담이 활성화되었고, 법과 제도의 변화를 위한 여성운동이 펼쳐졌으며 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비판하는 여성주의의 담론적 실천이 지속되어 왔다. 이런 활동의 구체적인 내용과 그 결과를 한정된 지면에서 상세히 열거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오히려 여기서는 ‘성폭력’의 개념을 통해 피해자의 관점에서 그 의미를 새롭게 규정함으로써 여성학이 사회에 던지고자 했던 메시지의 핵심이 무엇이었는가를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성폭력에 깃든 여성주의의 문제의식은 기존의 성범죄를 더 무겁게 처벌하고 엄단해 달라는 요구라기보다, 시민적 권리의 주체로서 여성이 누려야 할 성적 자유와 자율성에 대한 인정의 요청을 담고 있다. ‘성적 자기결정권’ 또는 ‘성적 자율권’은 섹슈얼리티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몸에 육화된 주체성을 시민권에 자리매김하는 단서라고 볼 수 있다. 1990년대 초에 한국의 여성운동이 성폭력을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로 정의한 것은 무엇보다 ‘정조의 죄’라는 전통적인 성범죄 관념과의 철저한 단절의 시도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가부장적 사회질서를 위반하는 성범죄를 엄단하면서도, 정조의 인장이 뚜렷하지 않은 여성의 권리 침해를 인정하지 않는 문화적 이중성이야말로 정조 또는 순결 이데올로기의 지배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정의상 피해자의 성적 자율성에 대한 인정의 요구를 내포하는 성폭력 개념의 출현은 ‘출산의 도구’와 ‘쾌락의 도구’로 이중적으로 객체화된 여성의 몸을 도덕적으로 자율적인 주체의 몸으로 회복하고자 하는 인정투쟁의 첫걸음이며, 기존의 성범죄에 각인된 정조라는 문제틀과의 단절을 선언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둘째, 여성학은 기본적으로 성폭력을 섹슈얼리티에 작용하는 성별의 권력관계로 인해 발생하는 집합적 현상으로 접근해 왔으며, 이를 통해서 개별적인 사건들의 법적 구제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화적 해석 맥락과 사회구조의 차원을 가시화할 수 있었다. 남녀의 성적 욕망의 표현에 대하여 서로 다른 이중의 잣대를 적용하는 차별적인 성문화의 관행은 성적 의사소통을 교란시킴으로써 폭력과 피해의 발생을 조장하고, 중립성을 표방하는 폭력에 대한 사법적 판단 기준 역시 이런 문화적 맥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또한 기존의 법령으로 보호되기 어려웠던 ‘성희롱(sexual harassment)’을 주제화한 것은 성폭력의 피해가 단지 성적인 자유의 침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의 고용조건이나 교육환경 등 생존권의 침해와 연동된 시민적 불평등이자 복합적으로 얽힌 사회구조의 문제임을 환기시켰다.

셋째, 성폭력의 범위가 기존의 범죄에 국한되지 않고 성희롱을 포함할 정도로 넓어지면서 일상생활의 성문화 전반에 걸쳐 모종의 ‘연속선’을 상정할 수 있게 된 것은 피해 여성의 경험 맥락에 대한 사회적 공감의 자원을 확보하고 폭력의 발생 구조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중요한 참조점이기도 하다. 물론 공권력에 의한 성폭력 외에도 분쟁시에 집단적으로 이뤄지는 강간, 국가에 의하여 체계적으로 자행되는 군대내 성노예제가 그 피해의 규모와 내용 면에서 한층 심각하고 참혹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1930년대부터 일본이 패전한 1945년까지 일본군에 의해 이른바 ‘위안부’로 동원된 여성들은 약 2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폭행과 협박, 취업사기, 인신매매 등을 통해 끌려가 평생의 한을 안게 되었다.

하지만 여성에 대한 폭력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낯선 사람’에 의한 폭력이 아니라 ‘아는 사람’, 즉 면식자(acquaintance)에 의한 피해이다. 신뢰관계에 있는 면식자에 의한 폭력은 바로 이런 ‘관계의 지속성’과 ‘공간분리의 곤란’으로 인하여 트라우마가 한층 깊어지고, 다른 피해에 노출될 가능성이 더불어 높아진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성매매 시장으로 진입하는 여성의 상당수가 가정폭력과 성폭력 피해 경험을 지니고 있어 가출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든가, 고용조건과 연관된 성희롱의 고통과 후유증이 성적인 피해의 정도만으로 측정되기 어렵다는 사실은 이 점을 뒷받침한다. 개별 사건들의 사법적인 해결을 통한 사후적 피해구제를 넘어서 여성에 대한 폭력을 예방하고자 한다면, 사전에 사회경제적 구조와 맞물린 폭력의 계기들을 차단하고 사회적인 안전망을 구축하려는 노력이 경주될 필요가 있다.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확인되는 ‘피해 경험의 연속선’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폭력’의 개념을 통해 여성들이 시도한 사회적 의사소통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이러한 소통의 물꼬가 트이지 않고 착종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폭력의 참혹함과 비극적 결과에 대하여 분노로 반응할 뿐, 가족이나 직장, 학교 주변의 일상적인 공간이 폭력과 인권침해의 현장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가능성에 눈을 감는 사회분위기도 한몫을 하고 있다. 법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지만 구조적 차원을 보여주는 여성주의의 집합적인 접근과 맥락적 이해는 개별 사건들을 다루는 법정 앞에서 정지된다. 여성주의는 피해 여성의 관점을 주장함으로써 중립성의 외피에 가려진 판단 기준의 남성중심성을 비판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날로 다양해지는 여성들의 정체성과 성향을 반영하는 피해자 보호의 원칙과 권리 정립은 아직 요원하다. 또한 ‘폭력’을 통해 ‘자유’의 인정을 요청했지만, ‘성적인 것’을 둘러싼 혼돈스러운 상황 속에서 저마다 자유를 실현하고자 하는 개인들의 활발한 소통을 매개할 수 있는 대안의 언어들을 제시하지 못하였다.

어쩌면 제3자의 위치에서 성폭력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인식과 눈높이는 아직까지 저 수원 사건들에서 경찰이 보인 무심함보다 더 낫다고 단언하기 어려울 것이다. 인문정신이 진정 ‘사람이 사는 세상’을 지향한다면, 우리의 인문적 상상력은 폭력의 피해로부터 생존을 지향하는 ‘피해자의 관점’을 이해하고 이들의 ‘다른 목소리’를 들어보는 소통의 과정으로 확장되어야 마땅하다. 또한 성폭력에 대한 의사소통은 바로 ‘지금 여기’ 우리가 몸담고 있는 친밀한 관계의 성적 의사소통으로부터 시작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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