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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숙/ '위험', 피할 수 없는 '유령 오케스트라'의 불협화음
프레시안(2010.10.8)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65495

현대 사회를 설명하는 주류 사회학에 의하면 '근대화'란 또는 '현대 사회'란 규범, 기능, 합리성이라는 문명화된 지휘자의 카리스마 아래 조화로운 선율을 연주하는 앙상블이다. 그렇게 연주되는 아름다운 음악의 장르는 '사회적 합의' 또는 '사회 통합'이었고 그 앙상블의 이름은 '국민 국가'였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이런 앙상블이 연주하는 아름다운 선율 사이로 귀청을 긁어대고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불협화음이 불쑥불쑥 끼어들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앙상블 연주마다 그림자가 되어 아름다운 화음을 압도해버리는 유령의 오케스트라로 불쑥 커버리지 않았나? 앙상블 연주에서 제외된 불쾌하고 귀찮은 소음들이 지휘자도 없이 자기들끼리 얽혀서 불안과 공포와 동정심, 분노의 소리를 만들어내는 유령의 오케스트라를 결성한 것 같다.

어느 순간인가부터 유령 오케스트라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서 그것은 현실이 되었고, 그것의 존재를 인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유령 오케스트라를 볼 수 없고, 그것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재현할 수 없다. 단지 재능 있고 열의 있는 작곡가와 지휘자들이 힘을 합쳐 불협화음의 세계를 체계화하고 그것을 다른 장르의 음악으로 '연출'하여 그것의 존재를 대략 형상화할 수 있을 뿐이다.

때로는 불협화음의 연출이 수지가 맞는 것이어서 앙상블 지휘자가 불협화음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자처하기도 한다. 불협화음 오케스트라가 만들어 내는 음악의 장르는 '위험(리스크) 갈등' 또는 '하위 정치'이고 연출된 그 오케스트라의 이름은 '글로벌 위험 사회'이다.



▲<글로벌 위험사회>(울리히 벡 지음, 박미애·이진우 옮김, 길 펴냄). ⓒ길
최근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2007년 저서 가 <글로벌 위험사회>(박미애·이진우 옮김, 길 펴냄)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왔다. 벡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가 일어난 1986년 (<위험사회>)를 발표했고 이 책은 그 후 30여 개 국어로 번역되는 반향을 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비판적 사회학자로는 드물게 세계적 스타 학자의 반열에 올랐다. 당시에 독일 사회학자들 사이에서는 <위험사회>가 신문 문예란에나 어울리는 에세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혹평도 있었다. 그러나 <위험사회>를 통해 발표된 그의 '개인화 테제'가 루만, 하버마스 등의 무게 있는 사회이론가들에게 수용되면서 벡의 영향력은 확고해졌다.

(벡의 '개인화 테제'는 위험으로 치닫는 현대 사회에서 그 위험을 개별적으로 감수해야 하는 불안한 개인이 출현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편집자>)

<위험사회>가 한국어로 번역될 무렵인 1990년대 중반 한국 사회는 갑자기 다리가 붕괴되고 백화점이 내려앉는 등 언제 어디에서 또 무슨 대형 사고가 터질지 모르던 시점이었다. 이런 사고는 천재가 아니라 인재였고, 단순한 부패나 합리성의 결여에서 초래된 것이 아니라 부패와 비합리성이 내재화되어 있는 '압축적/돌진적 근대화'의 한국형 합리성에 기초한 시스템적 결과라는 결론이 났다. <위험사회>는 당시에 재해와 위험, 안전이 담론화되고 이론화되는 데에 크게 기여했고, 그렇게 해서 한국 사회도 (압축적) 근대화의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인 (한국형) 위험사회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벡의 개념에 한층 더 맞아떨어지는 방향으로 위험사회가 되기에는 한국 사회에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광우병 파동,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조류독감, 최근의 이상 기후 등을 겪으면서, 한국 사회가 '한국형' 위험사회일 뿐 아니라 그냥 위험사회이기도 하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형' 위험사회의 예들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고 최근에는 다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4대강 문제, 천안함 사건, 바로 며칠 전의 부산 해운대 초고층 빌딩 화재 사건 등은 '한국형' 위험사회의 최근 사례들이다.

<위험사회> 이후 20여 년이 지난 후 출판된 <글로벌 위험사회>에서는 저자인 벡의 개념 변화를 볼 수 있다. 1997년에 '세계화(지구화)'에 관한 첫 단행본 (<지구화의 길>)을 출판한 이래 벡의 관심은 독일 사회의 울타리를 넘어서 세계로 확장되었다.

2007년 3월 28일 독일의 보수 언론인 <벨트 온라인(Welt Online)>과의 인터뷰에서 벡은 <위험사회> 당시에도 이미 위험의 세계적 성격을 주장했지만 당시에 자신은 놀랄 만큼 일국적이고 목가적으로 논의를 전개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위험사회>와 <글로벌 위험사회>의 차이는 "단지 재난만이 지구 수준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는 그러한 재난에 대한 일반적 예상 역시 지구 차원에서 안정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구 사회는 위험사회에 대한 '계몽'을 자임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글로벌 위험이 글로벌 차원에서 예상되고 인지되고 논의되고 갈등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에 일국적 세계 체제, 또는 국제 관계라는 기능주의적 세계 체제를 넘어서 이제 <글로벌 위험사회>의 발현을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험이 정치적 이슈가 되는 위험사회가 지구적 수준으로 확대 또는 연결되고 있다는 의미에서만 <위험사회>의 문제의식이 확대된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는 '글로벌 위험' 자체도 기존의 환경 위험 뿐 아니라 글로벌 금융 위험, 테러 위험으로 분화된다. 환경 위험은 주로 기후 변화의 측면에서 다루어지고 있고, 금융 위험 및 테러 위험과의 공통성과 차별성이 논의되고 있다.

기후 변화로 대표되는 글로벌 환경 위험과 금융 위험, 테러 위험 중에서 가장 이질적인 것은 테러 위험이다. 다른 위험들이 가해자와 책임자를 정확히 가려내기 어렵다는 의미에서 '비고의적'인데 비해 테러 위험은 가해자와 가해가 일치하는 '고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로벌 테러 위험도 다른 글로벌 위험들과 마찬가지로 예측 불가능하다. 언제 어디서 누가 일으킬지를 알 수 없는('무지') 불확실성에 기초한다. 또 다른 글로벌 위험들과 마찬가지로 현대적 제도 실패에서 기인하는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이다.

글로벌 환경 위험과 금융 위험 역시 구별되는데, 그것은 단지 다른 유형이라는 데에서 끝나지 않는다. 벡의 개인화 테제의 일관되는 흐름이 여기에서도 나타난다. 그리하여 경제적 작용에 근거하는 금융 위험은 지구적 연대보다는 분열을 가져오는 것으로 이해된다. 금융 위험과 테러 위험은 환경 위험 못지않게 글로벌 수준의 현실 구성, 즉 세계(시민)주의의 현실성을 강요하는 글로벌 위험으로 작용하지만 세계(시민)주의의 규범적 성격까지 갖추지는 못한다. 반면에 환경 위험은 글로벌 위험을 생산하는 리스크 권력(개념 규정 권력, 체제 권력)에 맞서는 글로벌 대항 권력을 추동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글로벌 금융 위험과 글로벌 테러 위험은 세계(시민)주의의 불가피성을 논증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 여기서 세계(시민)주의는 규범적 차원과는 무관하다. 즉 '세계(시민)주의 이상'과는 하등 관련이 없다. 오히려 세계(시민)주의는 글로벌 위험에 의해 강요되는 현실적 변화이고 글로벌 차원으로의 사회 변동(거시 사회학의 범위를 뛰어넘는 메타 변동)을 의미한다. 반면에 글로벌 환경 위험, 특히 기후 변화는 이러한 사회 변동에 도덕적 가능성을 부여한다. 금융 위험에 의한 개별적 '손해'와는 다른 '공감(동정심)'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위험의 '연출'이 메타 권력 게임의 도구로 이용될 뿐 아니라 동시에 인류의 생존과 미래에 대한 성찰을 여는 열쇠로도 작용할 수 있다.

최근 글로벌 테러 위험의 상징인 오사마 빈 라덴이 파키스탄의 수해 피해 주민들을 돕도록 촉구하며 기후 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강조했다. 재화는 만인을 분열시키지만 위험은 만인을 평등하게 한다는 <위험사회>의 테제를 확인시키는 것 같다.

그러나 <글로벌 위험사회>에서 벡은 위험의 평등화 테제를 상대화한다. 위험사회의 역동성이 신분과 계급을 뛰어넘어 전개된다는 생각은 "여전히 옳지만 너무 불분명하다"(51쪽)는 것이 그 이유이다. 대신에 그는 '글로벌 리스크의 불평등 동학'을 개진하고자 하는데, 그 핵심에는 '리스크(위험)를 정의하는 권력을 누가 행사하는가?'라는 지배 관계의 문제가 놓여 있다. 벡은 개념 정의의 문제, 즉 위험을 생산하고 분배하는 규범 및 제도와 관련된 담론 권력의 문제를 현대 사회 지배의 중심 문제로 제기한다.

재화와 관련된 생산과 분배의 문제보다는 규범과 제도, 국민 국가를 사회와 사회 갈등의 중심에 둔다는 측면에서, 벡은 한편으로는 사회학의 전통에 충실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주류 사회학을 넘어서려는 비판이론의 전통에도 맞닿아 있다. 후기 산업사회론자들과 마찬가지로 벡은 좌우를 초월하는 광범위한 소비자들을 시민 세력으로 본다. 또 그들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는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기능과 규범, 현대적 합리성에 의해 조율되는 '사회 통합'(국민 국가 정체성)의 제도 형이상학과 그 형이상학이 수반하는 위험과 권력, 지배 관계에 천착함으로써 그는 시민 세력이 체제 순응적이고 상호무관심한 자유로운 개인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지 않는다. 시민 세력은 오히려 불확실한 미래에 의해 위협받고 불안하며 동정심을 통해 타자와 공감하거나 공포심에 기초한 분노를 폭발시켜 정치의 영역을 변화시키는, 개인이기를 강요당한 사람들이다.

2007년 <글로벌 위험사회>가 독일어로 출판되었을 때, 독일 언론의 평은 상당히 냉소적이었다. 합리적 보수 언론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너 차이퉁>은 벡이 고급 일간지에 쓰는 칼럼은 훌륭하지만 이 책에서는 자기주장을 되풀이할 뿐이라고 썼고, 자유주의 좌파 성향의 <쥐드도이체 차이퉁>은 이 책을 읽는 것이 리스크라고 했다.

올해 4월에 필자가 뮌헨에서 벡을 만났을 때, 벡은 독일에서 세계(시민)주의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신이 비판받는 이유가 국민 국가 체제, 또는 국민 국가 사회학에 대한 자신의 비판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독일의 방어적인 국민 문화에 비교할 때 그의 세계(시민)주의 주장이 너무 앞서간 것은 사실이다.

벡을 스타 사회학자로 만들어준 <위험사회>에 비해 <글로벌 위험사회>는 확실히 읽는 맛은 덜하다. 그러나 글로벌 위험 불평등에서 약자 입장에 있는 지역 출신인 필자가 읽기에 <글로벌 위험사회>에는 읽는 맛에 비교할 수 없는 도덕적 깊이가 한층 깊어져 있다. 위의 <벨트 온라인>과의 인터뷰에서 벡이 말했던 것처럼 <위험사회>에서 벡은 '일국적이고 목가적'이었다. 필자가 독일어로 처음 <위험사회>를 읽었을 때, 필자는 벡이 매우 날카롭고 비판적이지만 여전히 진화론적 사고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고 생각했다. 벡이 비판이론 방향으로 점점 더 가까이 올수록 그는 세계(시민)주의자가 되어갔고, 그의 글은 더 난해해지고 복잡해졌지만 그 만큼 더 사회 이론적으로는 성숙해졌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위험사회>에서 벡은 테제 형식으로 이론적 논의를 개진했다. 그만큼 조심스러웠고 논리가 탄탄했으며 경험 사실에 밀착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논의 전개 방식은 비실증주의적이었고, 실증적으로 자료를 다루는 사회학자들의 눈에는 '과장된 해석'으로 보였다. 필자가 뮌헨 대학교에서 말하자면 학부 졸업 시험에 해당되는 중간 자격 시험을 보았는데, 그때 벡의 위험사회를 주제로 구술 시험을 본 적이 있다. 시험을 맡은 교수는 현재 베를린 사회조사연구소 수장인 알멘딩어(Jutta Allmendinger) 교수였는데, 그는 벡이 말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사실'이 아니라 무엇이냐는 것이 구술 시험의 질문 중 하나였다.

<글로벌 위험사회>에서는 그 문제에 대한 답이 설명되어 있다. 벡이 말하는 '사실'이 무엇이며 '현실'이 무엇인지, 사실주의와 구성주의를 어떻게 이해하며 어떻게 극복하고자 하는지가 논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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