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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성] [기고] 신뢰받는 시장, 소비자 기업 당국 모두의 책임
[동아일보] 2008-10-27

유효기간이 지나 사료로밖에 쓸 수 없는 냉동닭을 다시 포장해 군장병의 식재료로 제공했다는 보도가 최근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얘기였지만, 상상할 수도 없는 소비자문제가 거의 매일 발생하다 보니 이런 건 눈에도 안 띄는 아주 조그마한 문제로 치부될 정도이다. 우리 가족의 식탁에 오를 음식이었다면 그런 상품을 공급하지도, 또 그렇게 안일하게 구입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단체급식을 만드는 사람에게 자녀의 도시락을 싸는 어머니의 마음을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최소한 금지된 제품을 공급하는 일은 묵과할 수 없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이런 경악할 만한 사건이 우리 사회에 새삼스럽지 않게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 이런 일이 끊임없이 일어날까. 우리가 이런 방식의 비정상적인 상행위에 너무나 관대했던 탓이다. 법으로, 또 규제로 정했으면 그건 우리가 지키기로 약속한 것이다. 그러나 넣지 않기로 약속한 것을 넣고, 하지 않기로 약속한 일을 하는 등 법을 어긴 행동에 마땅한 벌칙이 주어지지 않았다.

언제나 그런 사건으로 온 나라가 며칠간 들썩인 뒤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고, 어떤 곳에서도 제대로 챙기지 않은 채 그냥 지나간다. 하지만 더는 안 된다. 지키기로 한 것은 지켜야 하고, 지켜지는지 반드시 감독해야 한다. 만약 감독할 수 없는 규제라면 애초에 도입하지 말았어야 한다. 그런 규제가 없다면 최소한 소비자는 스스로라도 방어하기 위해 애를 쓸 것이기 때문이다. 느슨한 규제가 없는 것만도 못한 이유다.

물론 위의 상행위처럼 파렴치한 수준은 아닐지라도 일부 소비자도 문제가 있다. ‘불량한’ 소비자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소비자의 권익을 위해 도입된 청약철회권을 악용하거나, 본인의 과실이 분명한데도 관계기관에 고발하겠다고 생떼를 쓰거나, 말도 안 되는 광고를 믿은 채 결국 사기를 당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바람직한 시장을 위해서는 소비자, 기업, 그리고 정부라는 세 축이 주어진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장기계획으로 발표한 ‘소비자정책 기본계획’은 전과는 차별화된 시의적절한 정책 안이다. 소비자로서의 국민의 역량을 강화하고, 책임지는 기업문화를 확산하고, 믿을 수 있는 시장을 구축하기 위해 효율적이고 능동적으로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기본 방향은 국내 소비자문제의 현실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이제까지 정부는 소비자를 기업의 횡포로부터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한정하면서도 기업의 횡포는 제대로 감시하지 못하는 소극적 기능에 머물러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소비자도, 기업도, 그리고 정부도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확실하게 책임을 질 수 있는 시장문화를 만들어 가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많은 사람이 ‘소비자 정책’을 ‘소비자 보호’로만 여기는 데 따른 거부감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소비자 정책 본연의 기능은 소비자의 이익만이 아니라 시장의 주체로서의 소비자와 기업이 공정한 룰 아래서 각자의 기능을 제대로 하도록 바람직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다. 소비자가 불공정한 대접을 받는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가 간여해 교정해야 하고, 기업이 불공정한 상황에 처할 때 역시 정부가 원조해야 한다. 양쪽 모두 도덕적 해이가 나타날 수 있으므로 정부는 언제나 끈을 늦추지 않는 감시자(watch-dog)여야 한다.

여정성 서울대 생활과학대 소비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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