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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한정숙 / 두 졸업 노래
한겨레 신문
기사등록 : 2011-02-25 오후 07:36:08

[세상 읽기] 두 졸업 노래 / 한정숙
서울대 교수·서양사

  
‘해바라기’의 노래라면 악보까지 수소문해 가며 듣던 시절이 있었다. 2집 앨범의 표제곡이기도 한 <그날 이후>도 꽤 괜찮았다. 나도 한때 이 노래에 ‘올인’했는데, 한 부분의 가사를 잘못 알아들었던 것도 한몫했다. 젊은이들이 헤어지면서 “매화꽃 피어난 황혼에 찾아오소서”라고 노래하다니 이것이야말로 대구(對句)를 찾을 수 없는 무상의 시정이다, 라고 나는 여겼었다. 표표히 세상을 떠돌다 매화꽃 피고 노을 깔린 어느 저녁에 술 한 병 꿰차고 기별 없이 옛 친구 집 사립문을 들어서는 시인 묵객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아 하고 내가 열변을 토하자 가까운 누군가가 “졸업식 노래를 가지고 뭘”이라는 냉정한 코멘트를 날려 왔다. 그러고 보니 가사의 단어는 ‘황혼’이 아니라 ‘학원’이었나 보다.

맞다. 이 노래는 졸업식장에서 손을 맞잡고 석별을 나누는 선한 젊은이들의 우정을 담은 곡으로 보기에 손색없다. ‘해바라기’의 자기분열 없는 유려한 서정이 가능했던 배경을 한 블로거는 이렇게 집약했다: “세계와 인간에 대한 의지와 믿음이 살아 있어 진지하고 따뜻했던 시대.” 그랬던가. 이 노래가 나온 것이 1985년. 실은 극히 암울한 시대였다. 군사독재 아래서 수많은 젊은이가 저항하다 죽어나갔고 그 독재의 끝이 어디일지 몰라 다들 머리와 가슴을 쥐어뜯던 시절이었다. 그 무렵 김지하의 시에 곡을 붙여 일부 젊은이들이 불렀던 <새>라는 노래에는 “끝없는 새하얀 사슬 소리”에 온밤을 새우는 심정, “묶인 이 가슴”의 처연함이 흐느끼고 있다. 그 또한 분명한 그 시대 정서였다.

그런데도 대학을 졸업하는 젊은이들은 “친구여, 그대 가는 곳 사랑 있어 좋으니”라는 축복이 지어낸 말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정치권력은 사악하지만, 인간은 서로 위해주고 보듬어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리라. 순진한 의식이었을까. 세상과 자아의 불화는 늘 말해졌음에도, 대학을 졸업하는 젊은이들은 여전히 “젊음의 고난은 희망을 안겨주리니” 하고 서로 노래해줄 수 있었다. ‘이 세상은 너 혼자 굶주린 늑대로 뛰어야 하는 곳’이라는 극단적 경쟁논리가 강요된 시절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5년 후. 2010년에 혼성 4인조 그룹 ‘브로콜리 너마저’가 또 하나의 노래를 들고 나왔다. <졸업>이라는 심상한 제목 아래서 노래는 첫 구절부터 쓰디쓴 현실인식을 보여준다. 젊음은 “그 어떤 신비로운 가능성도 희망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시절이고 나는 “어느 곳에도 없는 나의 자리를 찾으려고 헤매었지만 갈 곳이 없는 존재”이다. 친구들은 떠나가지만 이를 “어디론가 팔려가고” 있는 것이라 여긴다. 풍요와 번영을 자랑한다는 2010년대 대한민국에서 많은 대학 졸업생들은 ‘젊음의 고난을 넘어서면’ 과연 희망의 빛이 보일지 알 수 없어 한다.

아르바이트와 빚으로 등록금을 내서 졸업을 하고 나면 취업난과 대출금 반환의무, 전세난이 코앞에 닥친다. 2010년대 “졸업”의 젊은이들은 서로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간직하지만 “이 미친 세상”은 믿지 않는다. 보컬인 덕원이 다소 덜 ‘가수스러운’ 목소리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부르는 이 노래를 젊은이들은 듣고 또 듣는다. 권력에 또박또박 충성하는 <한국방송>(KBS)은 이 노래를 방송금지곡으로 규정했고, 대중음악인들은 2011년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최우수 모던록상 수여로 응답했다. 노래를 금지한다고 현실과 현실인식에 변화가 생기는 것도 아닐 것이다.

언론은 대학문을 나오는 혹은 이미 나온 젊은이들 중 상당수가 처한 현실을 “그들에게는 봄이 없다”고 표현한다(2월24일치 <한국일보> 기사 제목). 반값 등록금 공약은 헌신짝처럼 저버린 채, 젊은이들이 눈높이를 낮출 줄 모른다고 핀잔이나 주는 권력자들이 2010년대 <졸업> 노래를 들으면 어떤 느낌을 가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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