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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숙 / 신자유주의와 교육의 ‘재봉건화’
한겨레신문
기사등록 : 2011-04-22 오후 07:44:13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474408.html


[세상 읽기] 신자유주의와 교육의 ‘재봉건화’ / 한정숙 (서울대 교수·서양사)


‘봉건적 질서로 되돌아감’이라는 의미의 ‘재봉건화’라는 말은 위르겐 하버마스가 공론 영역에서 국가통제 강화를 가리키는 데 사용한 말이다. 이에 따르면, 근대사회 형성 과정에서는 시민계급이 구성하는 공론장이 중요한 구실을 하였는데, 이것이 다시 쇠퇴하고 있으며, 권력이 담론을 생산하고 보급하면서 대중이 문화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최근 한국 교육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재봉건화’의 또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봉건적 질서는 신분제적 위계서열에 바탕을 두었고 특권과 특수주의를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이 사회에서는 교육 또한 귀족-양반 계급의 집안에서 사적으로 행해졌다. 반면 근대 시민사회는 천부인권 사상에 바탕을 두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공적 영역에서 제도적으로 실현하고자 했다. 만인에게는 교육받을 권리가 인정되었다. 차별 없는 일반교육이 근대 공교육의 원칙이 되었다. 공교육 체계는 획일성과 국가주의 주입을 특징으로 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독서 능력과 비판적·자율적 사유 능력을 기른 인간은 정신적 자유를 통해 획일적 사고의 테두리를 넘어설 수 있기에, 그 최소한의 바탕을 제공하는 보편적 근대교육의 순기능도 많은 사람이 인정해왔다.

한국에서도 근대교육체제 확립 뒤 교육은 계층이동의 통로이자 사회적 평등의 기둥이 되었다. 의무교육 제도와 국공립학교 체제는 교육의 공공성과 인간의 교육권을 유지하는 구실을 하였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도래와 더불어 제도교육의 상당부분이 시장에 ‘아웃소싱’되었다. 사교육 영역이 해가 갈수록 커지고, 사교육 수혜 기회는 부모의 재력에 비례하고 있다. 이제는 대학교육도 점점 더 ‘아웃소싱’되고 있다. 기업 필요에 따른 연구비 지원은 진행된 지 오래되었고, 급기야 대학은 학생들의 일상도 신자유주의와 기업의 영역에 맡기기 시작했다. 교육을 위한 공적 지원은 폐지되거나 그 비중이 삭감되고, 그 자리에 기업이 들어서고 있다. 기업이 세운 대학건물 안에서 기업이 운영하는 커피점은 커피 한 잔에 4000~5000원씩 받는다. 기업은 대학에서 각종 영업행위를 함으로써 학생들을 상대로 수익을 올리지만, 장차 기업에 취직하기를 원하는 대다수 학생들은 일상을 지배하는 기업에 의한 대학교육 공공성 파괴에 항의하지 못한다. 신자유주의 아래서 기업은 봉건영주 못지않은 권력을 누리거니와, 교육의 장에서도 새로운 봉건영주들을 향한 복종이 강화되고 있다.

국립대학은 학문 발전과 고등교육을 위해 국가가 대학에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음’을 이상으로 여기는 기구였다. 이 체제하에서 대학의 운영은 원칙적으로 대학인들의 공동체가 맡아왔다. 국립 교육기관은 사립 교육기관의 지나친 사적 영역화도 견제하는 구실을 해왔다. 그런데 현재 추진되고 있는 국립대학 법인화는 대학의 기업화를 향한 발걸음이다. 이것이 완료되면 국립대학에서 그나마 유지되어 왔던 대학의 자율성은 ‘대학기업’의 수익원칙에 밀려날 위험에 처한다. 교육은 인간의 자기발전과 정신적 해방을 위한 활동이 아니라 교육기업의 최대이윤을 위한 수익사업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사이의 구분은 점점 심해질 것이다. 이런 과정으로 나아가기 위한 국립대학 법인화법이 국회에서 날치기로 처리되었어도 이것이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사실을 말하기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다.

자본 앞에서 인간이 비판적 지성의 자기전개를 포기하는 과정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교육이 복지와 공공성의 영역이 아니라 자본이익의 영역이 되어 가고 있는데도 이를 막아내야 한다는 목소리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 공론장의 재봉건화와 교육의 재봉건화가 함께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어떻게 막아야 할까.

한정숙 서울대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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