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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숙 / 러시아 가스관과 남북관계
등록 : 2011.10.05 19:07
http://www.hani.co.kr/arti/SERIES/56/499396.html

[세상 읽기] 러시아 가스관과 남북관계 / 한정숙


모스크바에 머무르고 있던 8월 중순, 주러시아 한국대사관의 사정에 밝은 지인을 만났더니, 외부에 밝힐 수 없는 이유로 주말에 비상이 걸렸다고 했다. 북한 관련 일인가 보다 짐작만 한 채, 다음주 초까지 기다려보려고 했다. 그런데 북한 최고 권력자가 러시아를 방문한다는 것을 러시아 지인들이 먼저 알려주었다. 그런 화제가 나올 때면 그들은 꼭 물었다. 남북관계는 어떻게 되느냐, 라고. 그저 얼버무리는 수밖에, 별달리 할 말이 없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하여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회담한 것은 경제적 지원 확대를 요청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러시아도 이에 응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북한이 지나치게 밀착되어 가는 데 경계심을 가진 러시아가 북한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이다. 한국 정치권에서는 이번 북-러 정상회담에서 남-북-러 가스관 연결 문제가 다시 거론된 것에 집중적 관심을 보인 듯하다.

남북을 연결하는 가스관을 통해 시베리아 천연가스를 공급한다는 구상은 1990년대 초부터 나왔고 그 후 여러 차례 거론되었다. 에너지 수송 비용을 절감한다는 점에서나, 남북관계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나 이 문제는 중요성을 띠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남북관계가 현재 극도로 경색되어 있다는 점이다. 상호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북한이 남북 연결 가스관을 폐쇄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에 남쪽도 이 제안을 무턱대고 받기 어렵다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가스관이 남쪽을 거쳐 북쪽으로 가게끔 노선을 설계하자는 구상도 제시되는데, 러시아나 북한이 받아들일지 불투명하다. 가장 단순한 대답은 그렇다면 남북관계를 안정시키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마침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개성공단을 방문하여 현황을 살펴보았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남북관계가 조금이라도 바뀌지 않겠는가 하는 추측도 나온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남북 사이에 예측 못할 일이 벌어지지 않게 준비하는 것이다. 그것은 과정이므로, 공동의 가스관을 사용하면서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해보는 것 자체가 신뢰구축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 또한 남북한이 서로 상대를 위협할 수 없게 바터를 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러시아 가스가 북한을 통해 남으로 내려온다면 남쪽은 북쪽에 전기를 공급하는 것이다. 북한 핵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여전히 초미의 관심사인 상황에서, 이른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방안으로 경수로 설치를 지원한다는 방안이 추진되다가 중단되었다. 그런데 후쿠시마 핵재앙 이후 원자력발전은 핵무기 못지않게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 다시 인식되게 되었다. 기술적 통제가 수월치 않은 북한에 또 하나의 원자력발전소를 짓는 것은 원래 그리 바람직한 대안이 아니었다. 남한에서 북한에 전기를 판매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은가. 북한이 남한에 전기를 의존한다면, 그리고 한국이 북한을 통해 연결되는 가스관으로 가스를 공급받는다면 남북한은 상대의 목줄을 쥐고 끊느니 마느니 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의 전망으로는 차기 러시아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현 총리가 될 것이다. 그는 유라시아 전역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를 갈망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에도 더욱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리라 예상된다. 그는 대통령 재임시 북한을 방문했고 이즈음 북-러 신조약에도 서명했다. 그가 다시 집권하면 북한에 대한 지원도 강화할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경쟁적으로 지원한다면 한국은 북한과의 관계에서 더욱 소외될 수 있다. 이제는 극단적 대결정책이 쓸모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남한과 북한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관계는 생각하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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