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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여정성][소비일기]동네 셀프주유소 등장 사건
[동아일보] 2008-04-16 49면

《학교 앞 주유소가 한동안 공사를 하더니 다시 열었습니다. 여느 날처럼 들어갔는데, 운전자가 직접 주유를 하는 이른바‘셀프 주유소’로 바뀌었네요. 차에서 내려 직접 기름을 넣을 생각을 하니 번거로웠지만 어차피 들어온 김에 차례를 기다렸습니다. 앞의 차들을 쳐다보니 갑갑합니다. 대부분 처음 셀프주유를 해 보는지 운전자마다 난감해 하며 너나없이 헤매고 있습니다. 그 사이를 단 한 명의 직원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설명하고 있네요. ‘저러느니 그냥 넣어 주겠다’ 하는 생각조차 듭니다.》
보고 있는 제 마음도 불안해집니다. ‘이 차의 주유구 마개를 한 번도 열어 본 적이 없는데 제대로 해 낼 수 있을까? 그동안 편안히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면 됐는데….’ 안 그래도 날씨도 안 좋은데 뭘 얼마나 아끼겠다고 이러나 싶어 얼른 차를 돌려 그 자리를 떠나버렸습니다.

그런데 문득 예전 생각이 나면서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하던 1980년대에 제가 살던 작은 동네의 모든 주유소는 ‘셀프’였습니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이라도 차에서 내려 주유구 마개를 열고, 호스를 넣고, 밸브를 올리고, 기름을 넣고, 다시 호스를 빼서 제자리에 돌려놓고, 마지막으로 주유구 마개를 잠그는 일은 너무나 당연히 제가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깜빡 잊고 마개를 안 닫았다가 마개를 잃어버린 적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놀러 갔던 뉴욕 시에서 ‘풀 서비스(full service)’라는 것을 처음 받아 봤습니다. 기름값이 우리 동네보다 훨씬 비싼 것을 보고 화가 났었지요. 갤런(3.79L)당 1달러 정도 비싸지 않았을까 싶지만 ‘직접 넣으면 될 걸 굳이 서비스해 준다며 값을 더 받는다’면서 아주 툴툴거렸습니다.

서울에 돌아와서도 처음엔 비슷한 심정이었지요. 차 안에 앉아 다른 사람이 기름을 넣어주는 것을 바라보는 게 어찌나 낯설던지…. 주유소에 갈 때마다 직접 내려 주유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요.

그런데 어느 틈에 그런 기억은 하나도 남지 않고 차에서 내리는 것조차 버거워하는 상태가 되었네요. 익숙해진다는 건 무서운 일입니다. 특히 편안함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사람을 참 무능력하게 만드는 거네요.

다음 주에는 그곳에 한번 들러 직접 기름을 넣어 봐야겠습니다. 괜히 아줌마까지 나타나 헤맨다고 뒷사람들이 볼멘소리로 투정을 부리더라도 말입니다.

셀프 주유소에선 L당 60원 정도 절약할 수 있다니, 저도 고유가 시대를 살아가는 절약정신으로 도전해 봐야겠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간단하게 하던 일이 못하는 일처럼 돼 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으로 도전해 봐야겠습니다. 참, 그 전에 차를 갖고 나가지 않으면 더 많이 아낄 수 있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죠?
서울대 생활과학대 소비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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