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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숙] [세상읽기] 평화지수와 평화교육
이라크전이 터지기 전해 가을, 내가 방문한 한 미국대학 구내 체육관에서 열린 미식축구 경기를 보러 갔을 때 일이다. 그 대학 선수들과 원정 온 팀의 경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어느 팀이 잘하는지 어디서 박수를 보내야 할지 잘 몰라 어설픈 관전을 하면서도, 나를 안내한 상냥한 박사과정 여학생이 하프타임만은 꼭 봐야 한다기에 얌전히 기다렸다. 하프타임이 되자 장내 아나운서의 호명에 따라 각 군(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 해안 경비대)의 깃발을 든 기수단이 박수를 받으며 운동장으로 들어왔다. 군사 행진은 아니되, 국가의 군사적 전통과 방위력 과시를 통해 군사적 분위기를 고양시키는 행사였다. 9·11 테러 이후 특수상황 속에서 미국 국민의 고조된 불안감을 달래고 철벽 방위를 확신시키려는 행사리라 생각하긴 했지만 여고생들도 군사적 편대로 조직하여 제식훈련을 시키고 사열식까지 치르게 하던 한국의 군사정권 시절이 떠올라 마음이 그다지 편치 않았다. 많은 사회에서 일상생활에 침투해 있는 군사문화가 만만치 않구나 생각하고, 평화의 감수성, 평화지수라는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다.
한 사회의 발전 정도를 재는 기준은 여러 가지지만 평화지수 또한 사회의 성숙도를 재는 주요 잣대의 하나다. 평화지수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지뿐만 아니라 항구적으로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여건과 사회 의지까지 고려하여 매겨진다.

모든 아름다운 것이 다 고투 끝에 얻어지지만, 평화 또한, ‘평화를 위한 투쟁’이라는 모순된 구절이 말하듯, 수고스러운 인간의 노력을 요구한다. 평화 운동가들이 조국의 배신자로 비난받고 이 때문에 목숨을 잃어야 했던 일도 드물지 않다. 1차 대전 발발을 막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한 프랑스 정치인 장 조레스나, 1980년대 국제 평화를 위해 진력한 올로프 팔메 스웨덴 총리는 암살당했다. 백범 김구가 남북 분단과 유혈 충돌을 막으려 백방으로 애쓰다 흉탄에 쓰러졌던 것도 그런 사례가 아닌가.

평화를 이루려는 노력은 이처럼 때로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어렵지만 그것은 또 그만큼 값진 일이다. 한국에서는 열전과 냉전을 거치며 오랫동안 안보 논리가 가장 우세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이제 평화체제 수립을 위해 한국 사회도 주체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그러자면 일상적 삶에서나 교육 차원에서나 평화의 정신을 가치의 중심에 두어야 한다. 그렇다면 학교 교육에서도 갈등을 평화롭게 해결할 수 있는 능력 함양, 국제평화 증진을 위해 노력할 필요성 등을 중시해야 한다. 사실 우리가 역사 교과서에서 배우는 동서고금의 영웅들은 다수가 전쟁 영웅들이다. 한 민족의 과거를 그린 서사시들도 대개 민족들 사이 전쟁에서 활약한 영웅의 무용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인간이 무리지어 살면서 생존을 위해 타인을 죽여야 하던 시절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인간이 언제나 피비린내 나는 정복과 전쟁에 열광한 것은 아니다. 정복자들이야 전쟁을 통해 지배영역을 확대하고 자기 이름을 날리고자 했겠지만, 민중에게는 전쟁과 폭력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가져다주는 인물이 진정한 영웅이었다. 평화의 수립자라는 명칭이야말로 민중이 바칠 수 있는 가장 명예로운 칭호였다. 그렇다면 역사교육에서는 정복자를 비롯한 군사적 영웅들만을 중시할 것이 아니라 평화를 가져다준 사람들, 인간의 평화적 심성을 기르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을 진정한 위인으로 기리고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겨야 한다. 평화교육의 강화와 그 바탕이 되어줄 학문으로서 평화학의 발전은 우리 사회가 주목해야 할 과제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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