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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조국] 386의 오늘과 내일
[경향신문] 2007-01-20

'386세대'는 1980년대 권위주의 체제의 억압 속에서 암울한 청년시절을 보내면서 직.간접적으로 민주화 운동에 관여한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대학 내에 경찰이 상주하며 교수와 학생의 활동을 감시하고, 일체의 집회 및 시위가 금지되며 이를 위반하면 학교에서 쫓겨나거나 감옥에 가야 하는 상황을 지금 청년들이 상상할 수 있으랴. 이 세대는 87년 6월 항쟁에 집단적.대규모적으로 참여하여 87년 헌법체제를 출범시켰고, 이후 진보적.개혁적 정치성향을 드러내면서 사회 각 직역(職域)에서 중추적 역할을 해왔다.

▶돌아보면 이미 '가진자' 위치에 민간 민선정부 출범 초기에는 '386'이란 단어는 호의적 의미로 사용되었으나 노무현 정부 중반기 이후에는 욕설의 일종이 된 듯하다. 현 정부의 정책실패는 모두 운동권 출신 386세대 정치인이나 청와대 참모의 탓이 되고, 386세대 유권자도 한심한 철부지로 내몰린다. 급기야는 386세대가 몸을 바쳐 쟁취했던 대표적 성과인 민주화도 조롱당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자는 386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스스로 돌아볼 필요를 느낀다. 386세대의 성과를 통째로 부정하는 주장은 무시해도 좋다. 그러나 자발적인 성찰은 필요하다.

첫째, 386세대는 권위주의 체제 때문에 고통만을 당한 것은 아니었다. 대학시절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지만, 한국 자본주의의 급성장 덕에 취업 걱정은 없었다. 감옥에 가는 희생을 치른 경우에도 이후 그에 부응하는 사회적 명예와 보상을 받았다. 이 점에서 과거의 민주화 운동 경력을 '훈장'으로 생각하며 뻐기는 사람은 반성해야 한다. 박종철, 이한열, 강경대가 보고 있지 않은가.

둘째, 386세대는 이미 '기성세대'이며 '강자'가 되었다. 직장에서는 중견이며, 가정에서는 부모가 된 우리는 하급자와 자식에게 새로운 '억압자'는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노동자 계급의 경우 전통적으로 '약자'로 분류되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 집단을 생각하자면 대규모 사업장의 조직 노동자는 분명히 '강자'이다. 많은 386세대 성원이 낮은 곳에 임하는 마음으로 시민사회운동에 헌신하고 있지만, 시민사회단체도 이제 무시 못할 사회적 힘을 가지고 있음을 자경자계(自警自戒)해야 한다.

이러한 자기성찰과 병행하여 386세대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첫째, 386세대는 이제 정치적 민주화를 넘어서는 사회적.경제적 민주화의 방안과 계획을 고민해야 한다. 사실 국가보안법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우리 사회의 정치적 민주화는 만개해 있다. 그러나 국내외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이 관철되면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과 고용 불안 등은 심화되고 있다.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운 이 문제는 오랫동안 386세대의 어깨를 짓누를 것이다.

▶사회.경제적 민주화 고민할 때 둘째, 386세대가 공유해온 사회적 가치를 확산시켜야 한다. 386세대가 단일한 지향과 이익을 공유한 정치집단은 아니다. 현재 지지하는 정당에도 차이가 있고, 현실의 정치.경제.사회적 쟁점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세대가 소중히 가꾸어온 가치는 존재한다. 즉, 민주주의의 기본 규칙을 깨뜨리는 사고 및 행동양식, '색깔론'과 지역감정에 의존한 정치운동, 비판과 토론을 용인하지 않는 권위주의적 사회문화 등은 결코 용인해서는 안된다는 합의다. 386세대는 이러한 합의가 사회 전체에 더욱 깊숙이 스며들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386세대는 이미 40대에 접어들었다. 40대면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다. 그리고 10년 뒤면 50대로 들어선다. 386세대는 이미 좋든 싫든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갈 책임을 지고 있다. 지금의 10대, 20대들에게 어떠한 사회를 넘겨줄 것인가 고민하고, 이데올로기 과잉의 논투(論鬪)보다는 실사구시의 해결책을 찾도록 노력하길 소망한다.

조국 서울대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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