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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조국] [세상읽기] 기업범죄에 너무 관대한 나라
[한겨레] 2007-04-09

며칠 전 법무부는 지난해 입법예고한 상법 개정안에서 ‘이중대표소송제’ 도입을 삭제하기로 확정하였다. 이 제도는 종속회사 이사의 위법행위에 대해 지배회사의 주주가 종속회사를 대신하여 책임을 추궁하는 소송제도다. 이는 우리나라의 재벌구조에서 지배회사가 종속회사를 전횡적으로 지배하는 것을 통제하기 위한 제도적 방안으로, 2005년 이후 법무부 산하에 설치된 상법개정위원회에서 도입을 확정했던 제도였다. 그런데 김성호 장관이 새로 부임하여 “기업하기 좋은 법적 환경 조성”을 강조하자 법무부는 이를 뒤집은 것이다.

한편 얼마 전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낸 제프리 존스 변호사가 서울고등법원에서 강연하면서 법관들에게 쓴소리를 한 바 있다. 한국에서는 기업이 분식회계를 1조원 넘게 해도 판사가 징역 3년 정도만 선고할 것이고, 그 후에도 기업인이 감옥에서 6개월 정도만 있으면 석방될 것이니, 한국 법원은 “매우 인간적”이라는 것이다. 최근 미국의 ‘엔론’ 분식회계 사건에서 분식회계 규모는 우리 돈으로 약 1조5000여억원이었는데, 이 회사의 대표이사에게는 징역 24년 4월이 선고되었다. 그런데 한국 법원은 20여조원의 분식회계를 저지른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에게 징역 8년 6월을 선고하는 ‘자비로움’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그리고 범죄를 저지른 대기업 총수가 유죄 판결을 받은 후에도 실형을 사는 일은 거의 없다. “기업 살리기”라는 명분 아래 이들에 대한 사면이 필요하다는 언급이 정치권과 언론에서 흘러나오고, 대통령은 슬쩍 이들을 특별사면하는 일이 반복된다. 근래 일어난 예로, 두산그룹 박용성 회장의 경우 회사 자금 286억원을 횡령하고 2838억원을 분식회계하여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지만, 곧 사면되어 경영 일선에 복귀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 사회에서 국가와 사회에 대한 기업의 직·간접적 영향력과 지배력이 대폭 확대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기업인단체와 일부 언론에서는 기업인의 비리를 비판하거나 기업활동의 준법성을 강조하기만 하면 ‘반시장·반기업’적인 ‘기업 죽이기’라고 반발한다. 기업경영에 대하여 형법이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은 자제해야 하며, 형법만으로 비윤리경영을 방지할 수 없음은 사실이다. 비윤리경영에 대하여 이중대표소송제와 같은 민사적 구제방안을 운영하고, 상법·증권법·경제법·조세법 등 비형법적 법률을 사용하여 회사 구조의 투명성 확보, 금융결제의 합리화, 회사 채권자와 소수주주의 보호 등을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부당 내부거래, 분식회계, 총수용 비자금 조성, 업무상 횡령·배임 등은 가장 ‘반시장·반기업’적인 행태이며, 그로 인한 사회적 피해 역시 심대하기에 형법의 개입은 불가피하다. 우리 사회의 발전에 기업이 중요한 몫을 하고 있으며,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하는 ‘기업가 정신’이 더욱 북돋워져야 함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시장경제의 근간을 뒤흔들고, 흑막 뒤에서 불법과 탈법을 추구하는 기업인들의 범죄에 대해서까지 온정을 베풀 수는 없는 법이다.

현재 정부와 기업계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타결로 우리나라가 진정 국제화되고,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고 축배를 들고 있다. 이 협정에 대한 엄정한 평가는 협정문 공개 이후로 미루겠지만, 기업범죄의 엄단 없이 선진국이 될 수는 없다는 점만은 분명히 하고 싶다. 그리고 김성호 법무부 장관이 추구하는 “기업하기 좋은 법적 환경 조성”이 총수지배형 기업구조의 개혁을 포기하고, 기업범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을 지속하겠다는 구상이 아니길 강력하게 희망한다.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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