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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조국] [세상읽기] 지역·계층 균형선발제가 먼저다
[한겨레] 2007-04-23

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 금지라는 ‘삼불정책’의 폐지 여부를 둘러싸고 논쟁이 뜨겁다. 먼저 이 정책 하에서도 중·고교 교육의 위기상황은 여전히 심각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사교육이 공교육을 압도하는 상황에서 공교육에서는 출석과 평가만이 남았다는 자조가 만연하다. 내신을 위하여 예체능 과목을 위한 과외마저 일어나고 있고, 수능과 논술 대비 학원은 심야까지 북적거린다. 가히 학생들을 내신, 수능, 논술로 옭아매는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 할 만하다. 유명 특목고는 비평준화 시절 입시명문 고교의 기능을 하고 있으며, 초등학생을 위한 특목고 대비 학원이 성황이다. 이런 사교육의 혜택은 대부분 상위 계층에 속하는 학생들이 누리고 있다. 그런데 현재 대학 입시행정의 초점이 온통 성적우수자 선발에 맞추어져 있고, 특목고를 우대하는 사실상의 고교등급제는 일부 사립대를 중심으로 작동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현상은 ‘삼불정책’이 유지되더라도 계속 재생산될 것이기에, ‘삼불정책’ 고수가 우리 교육위기 해결의 정답이라고 주장하는 교육부의 인식은 안이하다. 한편 교육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외면하면서 ‘삼불정책’ 폐기를 요구하는 ‘명문대학’은 이기적이다.

이에 필자는 ‘음서’(蔭敍)의 징표를 드러내는 입시제도의 개선을 위하여, 국립대 및 일정 규모 이상의 정부 지원을 받는 사립대의 경우 ‘지역·계층 균형선발제’를 의무적으로 시행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의 교육체제 내에서 승자가 된 성적우수 학생의 선발경로와 별도로, 교육의 기회가 박탈·제한된 환경 속에서도 상당한 성과와 잠재력을 보여준 학생의 선발경로를 만드는 것이다. 현재 서울대는 입학정원의 20% 정도를 ‘지역 균형선발제’를 통하여 뽑고 있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이 시도를 확대·발전시켜 정원의 30% 이상을 ‘지역·계층 균형선발제’로 뽑을 필요가 있다. 이러한 길을 열어놓을 때 중·고교에서의 공교육도 살아날 것이다.

필자는 강의실에서 어린 시절부터 국제경험이 있으며 탁월한 성적을 구비한 학생과, 지방의 서민가정 출신으로 어려운 조건에서도 꿋꿋이 성장해온 학생 모두를 만나고 싶다. 대학 캠퍼스에서 이들이 어울리고 논쟁하고 소통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우리 사회와 대학은 왜 미국 ‘아이비리그’의 대학들이 성적이 모자라는 사회·경제적 약자계층 출신의 학생들을 장학금을 주면서 입학시키는지 그 이유를 고민해야 한다.

진정한 ‘명문대학’이라면 상층계급 출신 성적우수자만으로 구성되는 귀족클럽을 지향해서는 안 된다. ‘지역·계층 균형선발제’를 통하여 다양한 사회적 배경을 가진 학생이 대학에 모여 같이 공부하고 교유하며 논쟁할 때 학문은 더욱 발전할 수 있으며, 사회통합의 효과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수한 학생을 뽑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대학으로서는 자연스러운 욕구이며, 현행 입시제도는 변별력이 취약하기 때문에 수험생이나 대학당국에 합리적으로 예견 가능한 결과를 제공하지 못함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수함에 대한 판단이 단지 최종적 시험성적의 우열로만 이뤄져서는 안 되며, 변별력의 강조가 ‘그들만의 리그’ 만들기로 이어지면 안 된다. ‘삼불정책’은 대학의 입시선발권을 제한하는 소극적 교육정책이지, 교육위기를 해결하는 적극적 정책은 아니다. ‘삼불’을 넘어 중·고교에서의 공교육을 살리고, 청소년의 입시부담을 줄이며, 교육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해소할 적극적 방안으로 ‘지역·계층 균형선발제’ 도입을 고민할 때다. 그리고 이 제도의 도입을 전제로 할 때만 비로소 ‘삼불정책’ 폐지를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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