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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숙인] <동아시아의 오늘과 내일> 초국가시대의 코리안 디아스포라
[경향신문] 2007-07-07

장면 하나
일본 오사카시 간조선(環狀線) 츠루하시(鶴橋) 역 앞에 서면 언제나 묘한 느낌이 든다. 민족과 국적, 역사와 이데올로기가 엮어낸 '운명의 자장(磁場)' 같은 것이 흐르는 곳이다. 식민지배의 역사가 낳은 디아스포라 재일한인이 가장 밀집되어 사는 곳. 츠루하시 역 인근의 이쿠노쿠(生野區)의 인구 14만명 중 한인은 약 3만5000명. 그러나 자장이 보이지 않고 흐르듯 이들도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입을 열지 않는 한.

서너 해 전 이쿠노쿠 현지조사를 하던 7월 어느 날, 세 명의 재일조선인을 만난다. 모두 우연히. 이른 아침, 숙소에서 츠루하시 역까지 타고 간 택시의 운전기사. 필자와 동료들의 한국말에 자신이 재일한인임을 (일본말로) 말한다. 2세. 그동안 "금융업"(사채업)을 했는데, 택시회사를 시작하려고 6개월째 직접 택시기사 일을 "실습"해 보고 있는 중이란다.

같은 날 오후, 교토에서 인터뷰를 끝내고 오사카로 돌아오는 기차 안. 동료 옆에 앉았던 남학생이 우리가 한국에서 왔음을 알고는 반가움을 숨기지 못한다. 교토대 법대에 재학 중인 재일한인 3세. 한국말을 전혀 모르다가 대학 들어온 후 배우기 시작했단다. 한국의 한 대학 어학당으로 유학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한국말로 의사소통을 하려고 안쓰러울 정도로 열심히 애를 쓴다. 오히려 추울 정도로 시원하게 냉방이 된 객차 안이었지만, 그가 내린 자리는 면으로 된 하얀 의자커버가 땀으로 흠씬 젖어 있다.

한 시간쯤 뒤, 서오사카 조선초급학교로 가는 길. 우리가 한국말로 떠드는 것을 듣고 한 아저씨가 길을 막는다. 해방 전 제주도에서 일본으로 건너왔던 부모. 2차대전 때 어머니를 모시고 제주도로 돌아갔다가 1962년 밀항으로 다시 들어와 살고 있다. 건물 경비로 일하기 때문에 밤에 일을 나간다. 츠루하시의 카바레 얘기를 한다. 3000엔에 맥주도 한 병 나오고 4시까지 있을 수 있는 아주 좋은 곳. 자주 간단다. 유일한 낙으로. 한국에서는 민요나 옛날 노래가 나오면 아무도 나가 춤추지 않지만 여기서는 민요가 나오면 다들 나가서 춤을 춘단다.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면 그저 평범한 '일본인'으로 스쳐 지나갔을 사람들. 오늘의 일본사회를 살아가는 평범한 디아스포라 코리안들의 얼굴이다.

장면 둘
1905년 4월4일. 영국선박 일포드(Ilford)호는 총 1033명의 한국인을 태우고 이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인천항을 떠나 멕시코로 향했다. 한국에서 단 한차례 떠났던 에네켄 농장 노동이민자를 태운 배였다. 이 배가 인천항을 떠난 지 반년 후, 대한제국은 을사보호조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5년 후에는 국권마저 상실하였다. 태평양을 사이에 둔 지리적 거리도 멕시코 한인들을 조국으로부터 멀리 단절시켰다. 실제 일포드호를 타고 떠났던 한인 중 다시 한반도 땅을 밟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고, 이들의 운명은 오랫동안 잊혀진 역사로 남았다.

7월의 유카탄 반도.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는 유카탄 반도는 끝없이 이어지는 정글 벌판이다. 백색도시 메리다. 계약노동기간이 끝난 후 한인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살던 도시. 현재 메리다시 한인회 회장 울리세스 박. 84세인 그의 노모는 몇분밖에 생존해 있지 않은 2세 할머니다. 텔마 리. 한국이름 이덕순. 그저 이웃에 사는 할머니 같은 얼굴과 또렷한 한국말이 그 인생이 거쳤을 역사에 대한 사색을 잠시 멈추게 한다.

집 옆에 있는 한인회관 건물. 여러 기록사진이 널려 있다. 메리다의 한인회는 오랫동안 거의 명맥이 끊겼다가 1990년대 말 재조직되었다. 80년대 중반만 해도 불과 열 가족 정도만 연락이 되던 것이 2003년 3.1절 행사에는 500명이 넘는 한인이 모였다고 한다. 한국의 올림픽과 월드컵 개최, 한국기업의 지명도, 멕시코 이민 100주년과 관련된 한국정부의 관심, 그리고 한국개신교의 선교사업 등이 다양한 얼굴에 낯선 이름을 가진 이들을 코리안이라는 끈으로 다시 잇고 있다.

국경도시 티후아나. 한인 후손 3세인 펠리페 킹 씨가 우리 일행을 맞는다. "우리 할아버지들은 우리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이렇게 한국인이 멕시코의 우리를 방문하게 되리라고 전혀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음식'을 만들어 우리 일행을 초대한 에르난 킹의 집. 할아버지가 한국을 떠나면서 가져왔던 여권은 '광무9년3월15일 대한제국 외부(光武九年三月十五日 大韓帝國外部)' 발행으로, 한문.영어.스페인어로 북미 묵서가(墨西哥)로의 여행이 명기되어 있고 붉은색 관인이 아직 선연하다.

1960년대 이후 '미국의 뒷마당'으로 급성장한 티후아나. 미국으로의 입국기회를 찾아 멕시코 전역에서 밀려드는 사람들로 매일같이 꿈틀대는 도시. 티후아나의 성장기는 멕시코 한인들이 본격적으로 티후아나로 이주한 시기이다. 현재 티후아나에는 1000여명의 한인 후손이 살고 있어 실질적으로 멕시코 내 한인 후손의 중심 커뮤니티가 되었다. 경제적 형편이 좋고 자녀 교육에도 열심인 이들은 초국가화가 제공하는 기회에도 민감하다.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상당수가 미국으로 이주해 나갔고, 형제나 자식 중 한 두 집쯤은 미국에 거주하는 경우가 흔하다. 한인회 모임에 타고 온 미국 브랜드 자동차에는 캘리포니아 번호판이 선명하다. 열심히 모은 돈은 더 안전한 미국계 은행에 예치하고, 미국 내 부동산 투자도 자산 포트폴리오에서 중요한 항목이다. '원정출산'으로 샌디에이고에서 낳은 아이를 매일 국경을 넘어 등.하교시키는 젊은 부모도 보인다.

한편 백화점 가장 좋은 자리에 위치한 삼성과 LG 브랜드를 보며, 국경 쪽으로 진출해 있는 한국계 기업들을 보며 이제 조상의 나라 한국도 가시권 안에 들어오고 있다. 샌디에이고의 영국계 조선소에 출퇴근하는 멕시코인 이람은 한인 4세인 부인과 함께 한국에 가서 멕시코 음식점을 해볼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4세 페르민, 자녀를 한국대학으로 유학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진지하게 묻는다. 한국어도 다시 배우기 시작한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배웠으면 좋았을 걸 새삼 아쉬워하기도 한다.

장면 셋
출퇴근길에 지나는 서울 서초동 외교센터 건물. 전면에는 언제부터인가 커다란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내외동포는 하나다!" 라디오의 토론 프로에서는 재외국민선거권 제한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이 나온 후 선거권 허용 범위를 놓고 격론이 한참이다.

위의 장면들은 우리가 '해외동포'라고 부르는 디아스포라 코리안들의 모습, 그들을 바라보는 현재 한국사회의 시각의 단면을 보여준다. 흔히 '600만 해외동포'로 불리는 전세계의 디아스포라 코리안들은 각 집단 고유의 기원과 역사적 경위의 차이만큼이나 현재 상이한 모습으로 고국을 상상하며 고국과의 관계를 맺고 있다.

원래 디아스포라(diaspora)는 그리스어로, 고대 그리스가 소아시아와 지중해 연안을 정복하고 식민화하면서 그곳으로 이주시킨 자국민을 지칭하는 말이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식민지 건설과 연결된 이주를 의미하는 '긍정적인' 용어였던 셈이다. 이후 유대인의 바빌론 유수 후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 도처에 흩어져 살 수밖에 없는 유대인과 이들의 상황이 디아스포라의 '원형'처럼 사용되면서, 디아스포라는 본거지로부터의 추방, 기약 없는 이산, 기원에 대한 기억과 귀환의 열망을 함축하게 되었다.

19세기 중반 이후 본격화된 코리안 디아스포라도 다른 많은 디아스포라 집단처럼 정치적.경제적 상황 속에 어쩔 수 없이 고국을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전세계적으로 국민국가적 소속과 충성심이 강화되어 온 20세기의 대부분을 국민국가적 소속과 관련해 양자택일의 선택을 강요당하거나 '뿌리 뽑힌 변종'으로 살아왔다. 흥미로운 것은 20세기 후반 전지구적 자본축적의 움직임 속에 국민국가들은 기존의 영토주의적 성격보다 초국가적 소속을 강조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해외 디아스포라 집단이 고국과의 유대를 끊지 않도록 애쓰며, 원격지 민족주의를 부추기고 있다. 이중국적을 허용하는 나라가 늘어나고 있으며, 디아스포라는 더 이상 유랑자가 아니라 해외에 거주하는 유용한 '자원'으로 개념화된다. 이런 움직임에서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향후 한국사회가 '해외동포'로서 이들을 어떤 방식으로 포섭해 가는지에 따라, 또한 전세계의 디아스포라 코리안들이 다양하게 전개되는 국가적.민족적 소속과 정체성의 정치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이들이 고국과 맺는 관계의 성격도 매우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권숙인|서울대 교수.인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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