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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한정숙] [세상읽기] 여자들은 왜 죽임 당하는가
[한겨레 2006-03-16 18:24]    



오래전 〈한겨레21〉에 기고를 하면서 ‘딸들은 왜 죽임당하는가?’라는 제목을 붙인 적이 있다. 당시 성행했던 태아 성별 감식과 이에 따른 태내의 여아 살해 문제를 다룬 글이었다. 이 현상을 사회문제로 보도하던 언론의 초점은 이 때문에 남녀 신생아의 성비가 지나친 불균형을 보인다는 데 놓여 있었다. 생명 경시 풍조나 여성의 권리는 문제가 아니었고, 성비가 안 맞아서는 나중에 남성들이 배우자를 구하기가 힘들어진다는 게 당시 사회의 걱정거리였다. 그때 나는 여성이 태내에서조차 축복받지 못하고 죽음을 당한다는 사실이 무얼 상징하는지 생각해 보자고 그런 제목을 달았는데, 나온 글에는 ‘태어나지 못한 딸들이여!’라는 영탄조 제목이 달려 있었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인위적 살해를 당하는 태아와, 자연유산 같은 이유로 태어나지 못한 태아를 구분할 수 없게 돼 버린 것이다.

엽서로 항의를 했더니, 해명은 없이 그주의 〈한겨레21〉 한 권을 더 보내왔다. 얼마 전 이 이야기를 하자 학생들이 깔깔거리고 웃으며 “입막음치곤 좀 약소했네요”라고 평했다. 당시 제목을 바꾼 담당자는 (개인적 ‘보복’을 위해 케케묵은 문제를 거론하는 게 아님을 부디 양해해 주시길) 분명, ‘살인’ 운운하는 살벌한 문구가 실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으리라.

별로 잘난 것도 없는 자질구레한 이 일을 나는 왜 또 끄집어냈는가? 그때에 견주면 많이(!) 바뀌었다는데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여성에 대해 사회 전체가 저지르는 범죄 문제를 다른 무엇인 양 호도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백건대 우선 나 자신부터, 얼마 전 〈한겨레〉에 서울구치소의 여성 수감자가 성추행을 당한 뒤 자살을 기도했다는 기사가 1면 머릿기사로 실렸을 때, 다른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는데 1면 머리는 좀 심한 것 아닌가 생각했다.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 후 피해 여성에게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른다. 성추행을 당한 후 그의 호소에 귀기울여주고 고통을 이해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자신이 수감자라는 이유로 성추행을 당했음에도 아무도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절망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성추행범과 그의 호소를 묵살한 사람들, 그리고 성추행당한 여자는 수치를 당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회, 모두 그를 살해한 게 아니고 무엇인가?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가 여성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목소리들이 난무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고통에는 신분에 따른 차이가 있다는 언설도 떠다니고 있다. 여기자와 음식점 여주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다르다는 소리가 국회의원이라는 성추행자의 입에서 나오고 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인간의 무감각에 눈앞이 캄캄해진다.

수많은 성폭행, 성추행이 상황을 가리지 않고 저질러지고 있고, 그리하여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수많은 여성들이 오늘도 목숨을 잃고 있다. 살해를 당하고 있다. 하지만, 하지만, 서울 구치소의 그 여성은 자살을 하지 말아야 했다. 남성 권력자들의 쾌락 독점 원칙에 따라 여성들의 성이 농락당하는 세상에서,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고통당하다가 목숨까지 버리는 것은 가장 부당하고 원통한 일이다. 성폭행이나 성추행을 당한 여성들은 목숨을 버릴 게 아니라 “재수가 없어서 지갑을 잠시 도난당한 것일 뿐이야!” 생각할 일이다. 자괴심이나 수치심을 품을 것이 아니라, 범죄자들을 엄벌에 처할 것을 요구해야 할 일이다. 더는 여성 살해가 용납되어선 안 된다.

한정숙/서울대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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