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관리자
[한정숙] [세상읽기] 따로 또 같이
[한겨레 2006-04-27 19:57]    



그 여학생을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그가 그렇게 자주 생각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는 내가 1년 전 도쿄에 들렀을 때, 숙소까지 안내해 준 재일동포 대학원생이었다. 비 오는 저녁 공항에서 기차를 타고 우에노 역에 도착하니 하얀 블라우스를 입고 머리가 긴, 맑은 눈빛의 젊은 여성이 기다리고 있었다. 숙소로 가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어를 참 잘 한다고 했더니, 서울에서 1년간 한국어를 공부한 적이 있다고 했다. 한국 생활이 어땠느냐고 묻자 그는 “제가 한국인이랑 똑같지 않아 너무 슬펐어요”라고 답했다.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표현할 길 없는 감정이 치밀었다. 미안함이었을까? 안타까움 혹은 슬픔이었을까? 그 모든 느낌이 뒤얽힌 것이었을까?

전형적인 한국인 모습에다, 한반도를 자기 나라라고 생각하는 그가 ‘나는 다르구나’라고 생각한 것은, 아주 미세한 차이를 큰 차이로 인식하게 한 한국인들의 반응 때문이었을까? 나는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똑 같은 한국 사람이란 건 없어요. 저도 주변 사람들이랑 얼마나 다른데요. 사람은 하나하나 다 달라요. 슬퍼하지 마세요”라고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다른 경우로, 한국인과 외국 출신 이주민 사이의 자녀가 늘면서 한국인의 혈통 구조가 바뀌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특히 동남아시아 쪽 혈통을 받은 이들을 코시안이라 부르며 이들에게 주목하는 논의들이 잦다. 지금까지는 주로 한국인과 비아시아계 주민 사이의 자녀를 ‘혼혈’이라 불렀는데, 코시안은 이와도 다른 용어인 듯하다. 이들의 비율이 늘어나서 단일민족 개념이 무너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런데 개천절 노래 가사처럼 단군 할아버지에게서 한 줄기로 이어져온 단일한 혈연집단으로서의 한국인이란 것은 원래 없었다. 다만 역사적으로 여러 혈연적·문화적 요소가 섞였으되, 별도의 민족 정체성을 가진 소수집단이 형성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한국인은 비교적 동질성이 강한 민족이라고 할 수는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껏 섞여온 혈통에 새로운 혈연 요소가 녹아든다고 해서 그게 이상할까?

그러고 보면 코시안이라는 명칭 자체도 좀 그렇다. 한국인은 아시아인이 아닌 듯한 어감을 주는데다 일본인이나 중국인과 한국인 사이의 자녀는 이렇게 부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이 별개의 정체성을 가진 집단이 되리라 예측해서일까? 별개의 정체성은 사회가 이들을 별개의 존재로 받아들일 때 형성된다. 이들이 정치세력화할 가능성에 대한 언급도 있던데, 이 또한 이들이 한국사회에서 살아가기에 충분한 사회적 지원을 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나타날 것이다.

필요한 것은 특이한 이름이 아니라, 이들이 혹시라도 차별을 느낄 소지가 없게 하는 것이다. 이주민 출신 부모가 문화 격차를 느끼고 가정에서 원활한 의사소통이 어렵다면 이들에게 언어·문화 교육을 비롯한 지원을 제공하고 자녀들에게도 교육 지원을 하면 될 것이다. 외모의 차이? 나의 한 유럽인 친구는 어느 날 갈색 머리를 아시아인처럼 까맣게 염색했다. 자기 사회에서 지배적인 외양만으로는 자기표현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어서 그런 것이다. 그렇다면 이주민 계통 가족들 덕에 한국인의 외모와 문화적 요소가 다양해지는 것을 고마워해야 한다.

‘한국적인 것’은 누구도 독점할 수 없다. 나도 당신도 하나하나 다 다르지만 그러면서도 어울려 살아가는 벗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이질적이란 자의식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고 더불어 살 수 있다면, 그 눈빛 맑은 재일동포 여학생도, 지금 코시안이라 불리는 사람들도 모두 “우리나라 참 좋네요”라 말하게 되지 않을까?

한정숙 /서울대 교수·서양사
 
 


[정진성] [시론]유엔 인권이사국에 걸맞은 활동을
[한정숙] [세상읽기] 식량 무기화의 위험은 정말 없나?

Copyright 1999-2018 Zeroboard / skin by hangraphics
Untitled Docu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