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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한정숙] [세상읽기] “아이들을 때리지 마”
[한겨레 2006-06-09 16:27]    



가까운 몇 사람이 둘러앉아 이야기하던 가운데, 세상은 과연 좋아지고 있느냐는 다소 걷잡을 수 없는 물음에까지 이르렀다. 누군가는 술집에서 큰소리로 대통령을 비판해도 잡혀갈 걱정이 없고, 교통경찰의 태도가 깍듯해진 것을 보면 세상 좋아졌다고 했다. 그러자 다른 이가 한숨 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인간의 폭력성이 줄어들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는데, 전쟁 같은 대량살상 현상 말고라도, 학대받는 어린이가 늘어난 것이 증거라고 했다.

이른바 ‘문명화 과정’을 거치면서 인간이 폭력성 표출을 자제하게 되었다고 하지만 고립된 사적 영역에서 폭력성은 오히려 늘고 있는 것 같다. 최대 피해자가 약자 중에서도 약자인 어린이들이다. 최근 부각되고 있는 어린이 성폭행도 그렇지만, 일부 부모의 자녀 학대도 심각하다. 칼·가위·다리미 같은 흉기로 상해를 가하거나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등, 끔찍한 사례들이 넘쳐난다. 어린이 성폭행도 성적 욕구 해소의 문제가 아니라 약자에 대한 공격성과 지배욕의 표현일 뿐이다.

어른들이 잔인해진 것일까, 아니면 은폐되었던 일들이 드러나고 있는 것일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과거에는 대가족이나 마을 공동체가 열린 공간으로 작용했기에, 가족 구성원 안의 차별은 있었어도 고립된 상태에서 가족 구성원이 포악하게 학대받는 일은 드물었다. 대가족 혹은 마을 공동체 전체가 은연중에 보살피는 속에 아이들이 덩달아서 자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러한 사회적 기제가 없다.

사실, 오늘날과 같은 ‘아동’ 개념은 근대의 산물이다. 근대사회는 아동 개념을 발명해내서 어린이들을 보호하고 보살펴야 할 특수한 대상으로 설정하고도, 그 책임은 핵가족내 부모에게만 지웠다. 부모라는 우연한 요소의 인격적 성숙도가 아이들의 운명을 전적으로 좌우하는 데서 어린이 학대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심각한 문제는 어린이 학대에 대한 처벌 수위가 낮다는 점과, 학대받은 어린이들이 숙식과 교육을 제공받으며 쉴 곳이 없다는 점이다. 얼마 전에는 세 살 난 딸이 한 밤중에 용변을 잘 보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구 때려 숨지게 한 30대 아빠가 고등법원에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 매 맞는 아내들이 수십 년 학대를 받다가 정당방위 차원에서 남편을 죽여도 대개는 최소 4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는 것에 견줘 어지간히도 관대한 선고였다. 고대 사회의 가부장들은 문자 그대로 가족에 대한 생살여탈권을 가진 지배자였다. 그런, 폭력의 합법적 행사자로서 가부장 개념이 현대의 폭력가장, 폭력부모에게도 적용되는 순간인 듯했다.

어린이 학대의 처벌 수위를 논하는 것은 가해자에게 엄벌로써 큰 고통을 주자는 게 아니라, 사회가 강한 예방의지를 표명하자는 뜻이다. 현행 아동복지법으로 부족하다면 보완하거나, 국회 일각에서 논의되던 아동학대 방지법을 통과시켜서라도 대처해야 한다. 그리고 학대당한 어린이들을 위한 쉼터도 곳곳에 마련해야 한다.

어린이 학대를 방치하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의 미래를 학대하고 상처를 입히는 일이다. 플라톤은 자식의 공유제를 말하였다. 충격적 주장 같지만, 그 정신은 자명하다. 어린이들은 사회 전체가 부모된 마음으로 돌보아야 하는 것이다. 어린이들을 폭력과 학대로부터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사회 전체의 폭력성을 줄이고 평화적인 심성을 확산시키는 지름길이다. 세상은 좋아지고 있다는 손쉬운 낙관은 누구에게도 허용되지 않는다. 최소한 사회가 학대받는 어린아이들의 눈물을 못 본 척함으로써 더욱 타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손을 높이 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아이들을 때리지 마!”

한정숙 서울대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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