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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조국] 기고 "하인스 워드, 한국엔 없다"
[한겨레] 2006-02-09

미국 최고의 스포츠 축제라는 슈퍼볼에서 한국계 혼혈 선수 하인스 워드가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불행했던 과거를 딛고 불굴의 의지와 한없는 사랑으로 아들을 성공으로 이끈 어머니 김영희씨의 노력과, 이를 성공으로 보답한 아들의 이야기는 태평양 양쪽에서 모두 인간승리의 진한 감동을 자아내고 있다. 워드와 김영희씨에게 경의와 축하의 인사를 보낸다.

그러나 동시에 워드가 우리나라에서 키워졌더라면 하는 가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워드의 성공에 찬사를 보내는 우리가 바로 이 땅에 살고 있는 수많은 혼혈인에 대해서는 어떠한 태도를 취해왔는가를 돌이켜 봐야 한다. 미군 기지촌의 술집 직원으로 흑인 미군 병사와 결혼한 김영희씨는 아들을 홀로 키우며 어떠한 수모를 겪어야 했을까, 워드는 어린 시절부터 어떠한 놀림을 받고 고통스러워했을까, 제대로 학업을 마칠 수는 있었을까 등의 질문을 우리 자신에게 던져보아야 한다. 미국 사회에서도 두 사람은 여러 편견에 시달렸겠지만, 우리 사회와 비교할 때 그 강도는 훨씬 약했을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단일민족의 신화에 사로잡혀 혼혈인들을 무시하고 폄하해왔다. 해방 뒤 우리 사회 혼혈인의 존재는 한국전쟁과 이에 따른 미군 주둔의 필연적 산물이었지만, 우리는 이들을 ‘더러운 피’로 취급하지 않았던가? 고려 시대, 나라의 잘못으로 원나라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환향녀’들을 ‘화냥년’이라고 부르며 배격했던 과거가 현대에 반복되었던 것이다.

많은 언론은 워드가 자신의 정체성을 잊지 않고자 한글로 자신의 이름을 팔뚝에 새겼다는 사실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런데 이 땅에 태어나 한국말밖에 할 줄 모르고, 치즈와 빵보다는 김치와 밥을 먹고 자란 혼혈인들의 정체성에는 왜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인가? 이 땅의 혼혈 한국인들은 오랫동안 ‘비(非)국민’으로 취급받으며 정체성 상실로 고통받아 왔다. 몇몇 멋진 외모의 혼혈 연예인의 인기에 가려 보이지 않는 혼혈인들의 아픔과 설움을 놓쳐서는 안 된다.

우리 의식 속에 있는 혼혈에 대한 편견을 직시하고 이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우리 사회는 큰 사회 문제에 부닥치게 될 것이다. 수천년 역사 동안 한반도에 흘러들어온 수많은 종족들이 혼융되어 현재의 한민족이 만들어졌고, 이러한 혼융으로 한민족이 더 풍부해지고 발전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역사기록이나 족보를 보더라도 많은 우리 선조들은 세계 곳곳에서 귀화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인도에서 온 허 황후의 후손이고, 아랍에서 온 처용의 후손이며, 중국에서 온 쌍기의 후손이자, 일본에서 온 김충선(사야가)의 후손이고, 또한 네덜란드에서 온 박연(벨테브레)의 후손이 아니던가. 게다가 공공연히 국제화와 보편적 인권을 외치는 현 시대에 편협한 순혈주의로 타인종과 혼혈인을 차별하는 것은 더욱 부끄러운 일이다. 이러한 의식을 가지고 있기에 국외에서 ‘어글리 코리안’이라는 오명을 자초하는 것이다.

현대 한국 사회는 이미 다인종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농촌 남성들의 국제결혼이 급증하고 있고, 국내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와 한국인 사이의 결혼도 증가하고 있음은 잘 알려진 일이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 땅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혼혈인들이 차별받지 않고 제대로 교육받고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데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출신 민족, 인종, 피부색 등에 의한 차별행위를 조사하고 구제조처를 마련하는 권한과 의무가 있는 국가인권위원회의 분발이 요망된다. 그리하여 미국이 아니라 바로 이 땅에서 성공하여 존경받는 혼혈 한국인의 모습을 보고 싶다.

조국/서울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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