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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숙] [세상읽기] 해리 벨라폰테와 콘돌리자 라이스
해리 벨라폰테의 노래는 1980년대 초까지도 방송에서 자주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요즘 같은 찜통더위에 듣기 제격인 ‘바나나 보트송’은 걸쭉한 목청으로 “데~이 오”를 길게 뽑으며 시작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어서 그저 발랄하고 경쾌한 노래인가 보다 했는데, 사실은 바나나를 거두고 운반하는 노동자들이 힘겨운 일 속에서 흥을 내고자 부르는 일노래다. 반면 “난 그녀를 베네수엘라에서 만났네” 하고 들어가는 ‘베네수엘라’는 이루지 못한 사랑의 기억을 서정적으로 노래한다. 그가 솜사탕 같은 목소리로 “그녀의 아름다운 웃음이 내 생각을 사로잡네”라 노래하면 듣는 사람의 가슴 한편도 ‘쌉싸근하니’ 아파 오곤 했다. 창법과 분위기가 판이한 노래들을 완벽히 소화해 내는 그의 노래 실력은 대단했다. 흑인 음악가 최초의 카네기홀 공연이란 명예가 거저 주어졌겠는가.
그러나 더 돋보인 것은 카리브해 출신 이민자의 아들로 뉴욕 빈민가에서 태어난 그가 킹 목사의 민권운동을 비롯한 인종차별 철폐 운동, 반전평화 운동에 동참하여 꾸준히 활동했고, 용기 있는 언행으로 뭇 사람들에게 힘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런 벨라폰테가 2002년 10월 〈시엔엔〉 방송의 래리 킹 토크 쇼에 나와 콜린 파월 당시 미국 국무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대통령 안보보좌관을 비판하는 것을 보았다. 당시 이라크 공격의 명분을 쌓고 있던 미국 텔레비전 방송에서는 전쟁을 부추기는 선전이 한창이었다. 벨라폰테는 흑인인 파월 장관과 라이스 보좌관이 대내외적으로 강자 위주의 정책을 펴는 미국 정부 안에서 견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것을 준열히 비판했다. 정연하고 거침없는 발언은 노래 못지않게 강렬했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은 기어이 일어났고, 파월은 2기 부시 정부에서 탈락했지만 라이스는 국무장관으로 승진했다. 흑인 여성이 세계에서 미국 대통령 다음으로 강력한 자리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화제를 모으기에 충분했고, 그녀는 공화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라이스 장관의 취임 후에도 어떤 긍정적인 정책변화가 있었는지 짚어내기 어렵다. 그녀는 말에서는 딕 체니 부통령이나 주변의 네오콘들보다 온건하지만 실제 정책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는 확신을 주지 않는다. 이라크 전쟁은 오히려 악화일로다.

그리고 2006년 여름, 헤즈볼라에 잡힌 자국 병사 두 사람을 구하겠다며 이스라엘군이 시아파 이슬람 공동체를 공격하면서 불붙은 레바논 사태에서도 그 해결을 위한 라이스 장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레바논의 어린이 분유공장을 폭격했다. 인종 말살을 일컬어 ‘제노사이드’라고 한다. 그런데, 아이들에게서 기본적 먹을거리를 뺏는 행위보다 더 분명한 제노사이드의 징표가 또 있을까. 매일이 이런 일의 연속인데도, 중동에 날아간 라이스는 ‘즉각 휴전’을 위한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다. 북한 핵문제에서도 중동정책에서도 봉쇄와 강경책으로 일관하는 것이 정책의 기조인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의 평가대로 라이스는 부시 대통령에게 ‘아니오’라고는 결코 말하지 못하는 걸까?

벨라폰테와 라이스는 흑인이라는 것 외에 음악적 재능이 있다는 데서도 공통점을 지닌다. 라이스가 원래 피아니스트가 되려 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고 지금도 피아노 솜씨가 뛰어나, 7월 말의 아세안지역포럼에서는 브람스의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했다고 한다. 피아노 솜씨처럼 아름다운 외교능력을 발휘하여 폭격으로 아이들이 죽어가는 일을 멈추게 할 수는 정녕 없는 걸까? 여성이 고위직에 오름으로써 세상을 평화롭고 인간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바란다.

한정숙 서울대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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