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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숙] [시론] 자이툰 왜 완전철수 않는가
[경향신문 2005-11-27 18:06]    

〈한정숙/서울대·서양사학과 교수〉


현대사 수업시간에 베트남전에 대한 발표를 맡은 학생이 스크린에 한 장의 사진을 비췄다. 1960년대 월남파병 부대 환송장면이었다. 맹호부대였을까? 아니면 청룡부대? 목에 꽃다발을 건 젊은 군인들이 도로를 꽉 메운 채, 시민들의 환호 속에 ‘조국의 이름으로’ 행군하고 있었다.

- 명분없는 전쟁, 명분없는 파병 -

당시 부산에서 이들을 실은 배가 떠날 때 이를 생중계하던 감격에 찬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지금도 귀에 선하다. 한국 록음악의 대부 신중현이 만들고 당대의 명가수 김추자가 노래한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는 파월장병을 주인공 삼은 민중영웅 만들기의 백미였다. 초등학교에서마저 파월부대의 이름을 딴 청룡, 맹호, 백마 팀으로 편을 갈라 운동회를 했다. 장병 위문 공연, 월남 아가씨와 따이한의 사랑 등등 온 한국이 베트남 이야기로 시끌벅적하였다.

베트남 전쟁의 본질에 대한 인식이 그리도 없던 그 시절, 일부 파병 반대자들의 목소리를 간단히 묵살한 채, 파월 부대는 박수갈채 속에 베트남으로 향했다. 그 속에서 초등학생들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군사문화에 물들어갔다. 그리고 가해책임에 대해서건 베트남인 피해자들의 고통에 대해서건 그 시절에 대한 성찰로서의 과거사 청산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로부터 거의 40년이 지난 2004년 8월, 환송행렬도 없이 목 쉰 아나운서의 중계도 없이, 자이툰 부대는 남몰래 빠져나가듯 서울공항을 통해 이라크로 향했다. 죽음으로 파병반대를 외치던 김선일씨의 호소도, 이라크 무장저항단체들의 테러 위협도, 한국과 국제 시민사회 각계의 열화와 같은 파병반대 목소리에도 아랑곳없이 한국정부는 명분없는 전쟁에 명분없는 파병을 감행하였다.

파병의 이유를 물으면 정부는 선문답처럼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말할 뿐이었다. 파병하지 않으면 다른 나라가 석유 이권을 다 가져가고 전후복구 사업에도 참여할 수 없을지 모른다고 남몰래 안달이 났던 것도 동기의 하나였을 것이다. 기를 쓰고 반대하는 시민사회에 대해 정부는 “말 안 해도 이심전심으로 이해하잖냐, 나 좀 봐주라”는 태도였다.

그리고 그후 자이툰에 대해서는 거의 전 한국사회가 곧 잊어버렸다. 범죄에 대한 공범자들의 어색한 침묵이 이런 것일까 싶을 만큼 기묘한 침묵 카르텔이 형성되었다. 3,000명 넘는 병력이 파견되었다는 것, 주둔지가 쿠르드족 지역인 아르빌이라는 것 정도가 그나마 관심 있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거의 전부였다. 유럽에서 이라크전 반대세력에 의해 대규모 테러가 일어났다느니, 한국도 테러대상국에 포함된다고 무장단체가 경고했다느니 하는 보도가 있으면 한 순간 반짝 관심이 환기될 뿐이었다. 파병비용이 얼마나 되는지 따져 묻는 국민도 없었고, 이라크인들이 이 부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주는 전문가도 없었다.

- 이라크 민주화 그들에 맡기자 -

한국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얼굴을 세워주기 위해 이라크의 얼굴을 짓밟아 버렸다. 들러리치고도 참 거북한 들러리인데도 이라크인들은 침략군으로 인식하고 있으니 더욱 민망하다.

하지만 부시의 미국이 미국 전체가 아님은 신디 시핸이 웅변하고 있다. 자이툰은 평화의 상징인 올리브를 뜻한다고 하는데, 평화유지군이라면 당연히 유엔의 승인을 받아 합법적으로 주둔해야 한다는 것을 두 말할 필요가 있을까?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자이툰 부대가 월남전 때처럼 민간인을 학살한다든가, 이라크 독립 전사들을 적이라고 여겨 죽이는 일을 저지르지는 않은 것 같다.

그만하면 충분하다. 정부는 최근 자이툰 부대 병력을 1,000명 감축하겠다고 결정했다. 그것은 2,000명 넘는 나머지 병력에 대한 파병 연장 동의를 얻어내기 위한 반대급부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라크 지도자들이 외국군 철수 일정표를 요구하고 있다. 이라크인들의 존엄성과 자존심을 생각할 때 지극히 당연한 요구이다. 이라크의 민주화는 이라크인들에게 맡기자. 하다못해 일본의 자위대도 완전철수의 시한을 밝혔다. 자이툰은 왜 완전철수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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