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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균] 기고- ‘사회적 합의주의 체제’,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한겨레 2005-03-07 17:21]  

[한겨레] 지난 22일 전·현직 교수 58명은 “사회적 교섭 참여 안건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민주노총 지도부는 이를 정면으로 비판해 논란이 더욱 뜨거워졌다. 대담자들이 ‘사회적 교섭 참여’ 쪽으로 의견을 모아 이 부분이 충분히 논쟁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호소문 발표에 참여한 김세균 서울대 정치학 교수의 기고를 싣는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진척되면서 대화와 타협이 중요해지고 있다. 날로 치열해지는 국제경쟁 속에서 한국경제가 처한 난국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부가 중재자로 나서 노사 대표들의 상호양보를 이끌어내는 ‘사회적 합의주의 체제 또는 노사정 합의 체제’의 구축이 바람직하다고 한다.

사회적 합의주의 체제는 노자가 상쟁이 아니라, 상생의 관계를 맺는 ‘계급타협 체제’의 구축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주의 체제를 구축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노자 간 계급타협 체제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로마에서 평민의 토지소유와 ‘공화국’이라는 정치형태가 귀족·평민 간에 계급타협을 성립시킨 것처럼,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타협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이를 가능케 하는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 조건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자본과 국가가 노동자 대중이 최소 수준일지라도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 즉 생존권을 누릴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생존권 보장이란 노동력의 ‘정상적인’ 재생산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실제로 제2차대전 이후 성립된 유럽의 ‘사민주의적’ 계급타협 체제나 미국의 ‘뉴딜적’ 계급타협 체제는 노동력의 정상적인 재생산 보장을 바탕으로 성립될 수 있었다. 이와는 달리, 실업은 실직자의 생존권을 원천적으로 박탈한다. 비정규직 노동 역시 노동자들에게 인간 이하의 삶을 강요한다. 초과노동 없이 살 수 없고, 노동력의 극심한 소모를 요구하는 높은 노동강도 아래에서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들도 자신의 노동력을 정상적으로 재생산할 수 없다. 이런 일들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보편적인 현상이 됐다. 이런 현실이 개선되지 않는 한 계급타협 체제의 구축이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과정에 적극 대응하여 개방적 통상국가 체제를 수립하려는 노무현 정권은 파견근로제의 확대와 해고요건의 완화 등을 통해 한국의 고용체제를 ‘비정규직 중심 고용체제’로 전면 개편, 노동유연화 공세를 최종적으로 완성시키려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노무현 정권은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 보호 등을 내세우면서 사회적 합의주의 체제에 참여하도록 민주노총을 종용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같이 권력과 자본이 신자유주의 공세를 펴는 조건 속에서 사회적 합의란 어떤 경우이든 노동 쪽이 ‘노동유연화’를 인정하는 기초 위에서만 이뤄질 수 있다.

때문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노동에 대한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가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대표가 사회적 합의에 나서는 것은 노동자 계급의 부차적 이익을 챙기기 위해 기본적 이익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권력과 자본이 최소한 노동유연화 공세를 중단하고, 비정규직의 축소 내지 폐기를 약속하지 않는 한 ‘사회적 교섭’에 나서는 것은 노동자 계급의 투쟁 대열을 흩뜨리는 데에 기여할 따름이라고. 이런 점에서 오늘날 흔히 제창되고 있는 ‘대화와 설득’, ‘사회적 대타협’, ‘거시적 코포라티즘과 사회적 대화전략’ 등이란 노동자 대중에게 신자유주의 체제에 굴종할 것을, 날로 비정규직 노동자로 전락하고 있는 이들에게 무장해제를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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