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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한정숙] 다시 노근리를 생각하며
[한겨레 2006-01-09 19:09]    


얼마 전 중부유럽을 찾아간 길에 아우슈비츠를 방문할 수 있었다. 폴란드를 점령한 독일 나치 군대는 이 나라 남부의 오시비엥침에 수용소를 세우면서 이를 아우슈비츠라 불렀고, 그래서 국제사회는 이 도시를 독일식 이름으로 기억한다. 나치가 운영한 인근 수용소들도 통칭 아우슈비츠라 불린다. 내가 찾았을 때는 연말인데다 강추위가 계속되어서 방문객이 별로 없는 적막한 분위기였고, 그래서인지 안내자의 음성은 더욱 결연하였다.

아사의 방, 독가스실, 화장터 등 상상을 초월하는 범죄가 저질러졌던 현장은 역사를 생생하게 상기시키는 박물관이자, 인권과 평화를 위한 교육장이 되어 있다. 이 박물관은 자신들의 고난과 나치의 범행을 기억하여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는 유대인들의 체계적 노력의 결과로 성립하고 유지될 수 있었다. 아우슈비츠에서는 폴란드 저항세력, 소련군 포로들 외에 ‘로마’라고도 불리는 집시들도 학살당했건만 사람들은 주로 유대인의 고난만을 기억한다. 집시들의 힘이 미약하다 보니 그들의 수난마저 가려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폴란드에서는 2차 대전 때 또 다른 반인륜 범죄가 자행되었다. 지금은 벨로루시 땅인 카틴 숲에서 소련군의 포로로 잡힌 폴란드인 장교와 민간인 2만명 이상이 학살된 사건이다. 소련은 나치의 소행이라 우기다가 페레스트로이카 시기에 이르러 자국 군대의 소행임을 인정했다. 이는 소련의 과거사 청산작업의 중요한 사례이다. 어떤 나라, 어떤 세력이 저질렀건 반인륜, 반인권 범죄는 반드시 밝혀지고 기억되어야 하며, 그 현장은 후세를 향한 경고와 교육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 두 장소는 잘 말해 준다.

한국은 어떤가. 민족의식, 반공의식을 고양하기 위한 곳말고, 전쟁 범죄와 반인륜 범죄를 기억하고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되새기기 위한 장소는 거의 없었다. 그런 점에서 6·25 전쟁 당시 미군이 민간인을 학살한 노근리 사건은 큰 의미를 가진다. 국회에서는 노근리 특별법이 제정되었고, 얼마 전에는 학살현장인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쌍굴다리 일대를 역사평화공원으로 조성한다는 정부의 결정까지 내려졌다. 진실 규명과 기억의 보존을 위해 수십년 동안 애써온 유족들의 분투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바로 5년 전인 2001년 1월12일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은 노근리 사건에 대해 사과하면서 피해자들을 위한 위령탑 건설과 유족들을 위한 장학금 지급을 약속했지만, 노근리 사건 하나만으로 다른 유사 사건들까지 다 처리해 버리고자 한 까닭에 당사자들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 그 후 5년이 지났건만, 미국 정부는 아무 배상도 하지 않고 있다. 이 문제는 별도로 해결해야 할 것이나, 노근리가 한국인들 스스로의 노력으로는 어느 정도 ‘기억의 장소’로 자리잡을 바탕을 마련했으니 뜻깊은 일이다.

노근리에 역사평화공원이 조성되고, 현재 추진되는 평화박물관이 완공된다면, 이러한 장소들을 연결하여 인권과 평화의 의미를 고양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한국인들이 외국 시민들에게 저질렀던 집단적 인권유린이나 불의가 있다면 그 또한 기억하여 사죄와 경고의 장으로 삼아야 한다. 그렇다면 아우슈비츠, 카틴, 밀라이, 아부 그라이브, 노근리, 난징, 간토, 그리고 한국인들이 베트남인들에게 아직 빚지고 있는 마을들을 잇는 인권 기념지 연결망을 형성하는 것이 어떨까. 그리하여 이 장소들이 세계 곳곳에서 찾아드는 순례자들을 향해 전쟁범죄와 반인륜범죄가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호소하는, 국제적 평화-인권 교육의 장이 되게 하면 어떨까.

한정숙/서울대 교수·서양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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