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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조국] [시론] ‘우리속 황우석’을 버리자
[경향신문 2006-01-08 18:03]    

〈조국/서울대 법대 교수〉


작년 황우석 교수의 논문조작 사건은 온 나라를 뒤흔들고 국민의 정신상태를 심리적 공황으로 몰아넣었다. 온갖 음모론이 돌아다니지만 난자 공여에서의 윤리 위반, 논문 작성 과정에서의 조작 등 주요 사실은 확인되었다. 논란이 있는 ‘원천기술’이 설사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줄기세포 형성의 효율성을 10배 이상 높였다는 것은 거짓임이 드러났다.

-학계·언론등 모두 자성필요-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황우석이라는 이름은 신성불가침의 대상이었다. 그의 연구를 둘러싼 문제점이 풍문으로 돌기도 하였지만, 그가 생명공학 발전을 통하여 한국의 차세대 성장동력을 책임질 사람이라는 명분 앞에 다 묻혀버리고 말았다. 황우석 교수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용납될 수 없는 사회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사태가 이렇게 흘러간 데에는 학계의 침묵, 정부의 무능과 방조, 정치권의 고무와 편승, 언론의 선정적 과장보도 등이 중대한 역할을 하였음은 물론이다.

어떤 보수신문은 황우석 교수에 대한 비판을 ‘좌파’의 음모로 낙인찍는 황당한 정치적 이데올로기 공세를 벌이기까지 하였다. 이번 사태가 마무리되면 학계, 정부, 정치권, 언론 등은 각자 자신의 과오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우리 자신도 한국 사회의 새로운 우상이었던 황우석에 대한 열렬한 숭배자가 아니었던가를 돌이켜보아야 한다. ‘개발독재’의 시대가 종료하였음에도 박정희식의 급속한 성장일변도 전략에 중독되어 있던 우리는, 황교수의 ‘한 방’으로 우리 모두가 ‘대박’을 터뜨릴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힌 것은 아니었던가.

‘민주시민’임을 자부하고 있는 우리가 황우석 앞에서는 진실보다는 애국심, 인권과 윤리보다는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을 우선시하였고, 감시 없는 지도자의 독주를 용인했던 것은 아닌가. 우리는 교주(敎主)에 의해 기망(欺罔)당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교도(敎徒)였던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 나 자신 역시 학자이자 시민단체 관련자의 한 사람으로서 황우석을 찬미하는 대열 속에 한 쪽 발을 들이밀고 있지 않았는지 자성한다.

자신에 대한 반성이 없다면 새로운 황우석은 또 나타날 것이다. 아니 우리 자신이 제2의 황우석이 될지도 모른다. 황우석 교수 사태의 교훈은 단지 과학기술 분야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의 어떠한 분야이건, 원칙에 기초하여 자신의 분야를 탐구하지 않고 성과지상주의에 빠져 조작과 과장을 일삼거나, 허명(虛名)을 날리고 인적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 급급한다면 그 끝은 또 다른 ‘황화’(黃禍)일 것이다.

사회 곳곳에, 그리고 우리의 정신세계 속에 남아 있는 ‘천민(賤民) 자본주의’의 문화와 행태를 일소하지 않고는 ‘세계화’도, ‘선진화’도 공허한 구호에 그칠 것이다.

-새희망 젊은 과학자들 키워야-

우리는 이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황우석 교수 사태를 계기로 우리가 이 점을 깨닫는다면 이번 사태로 인한 분노와 허망함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 속에는 황우석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진실 앞에 용감했던 젊은 과학자들은 우리의 새로운 희망이다. 우리 과학계와 사회의 자정능력은 바로 이들 덕으로 전 세계에서 인정받게 되었다.

이 순간에도 박봉을 기꺼이 감수하며 실험실의 밤을 오직 진리에 대한 열정으로 밝히고 있는 과학자들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 아닐 수 없다. 이들에 대한 체계적 지원은 여전히 필요하다. 그리고 황우석 교수 사단에서 ‘월화수목금금금’으로 분투하였던 무고한 젊은 과학자들에 대한 위로 역시 필요하다.

이제 우리 모두 ‘우리 속의 황우석’을 버리고, ‘우리 속의 BRICS’를 키워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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