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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배은경] <남자는 원래 그래?>를 읽고
배은경(사회학 박사, 서울대 여성연구소 연구원)


<남자는 원래 그래? >는 일본의 철학자 모리오카 마사히로가 쓰고, 김효진이 옮겨서 리좀 출판사라는 작은 출판사에서 2005년 10월 1일자로 한국어판을 펴낸, 따끈따끈한 새 책이다. (모리오카 마사히로는 1958년생이며 오사카부립대학 종합과학부 교수로서 분과학문의 경계를 넘어서며 인문학적 작업을 해 오고 있다.)

이 책은 연전에 나온 고 전인권의 <남자의 탄생>과 같이, 남성이 일인칭으로 스스로를 성찰하며 서술해 낸 보기 드문 남성학 저서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 저자가 자기 섹슈얼리티 경험을 진솔하게 토로하며 자기분석을 기반으로 남성 섹슈얼리티 일반에 대한 진술을 설득력있게 전개해 나간다는 점에서 매우 매력적인 텍스트이다.

저자의 기본적 출발점은, 알려진 바와 달리 대부분의 남성이 '불감증' 상태라는 것이다. 킨제이가 주장한 것과는 달리 사정=남성의 오르가즘이 아니라는 것이 모리오카의 주장이다. 그는 여성들의 성적 쾌감이 훨씬 풍부한 것임에 반하여 남성의 사정은 배설의 감각과 같은 빈약한 것인데도 기존의 담론 속에서 불감증은 오히려 여성의 증세인 것 처럼 얘기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그의 분석은 남성들은 기본적으로 '느낄 줄을 모르'므로 '느낄 줄 아'는 여성들에 대한 envy를 갖고 있고, 아울러 자신의 남성 신체에 대한 자기 혐오 역시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는 쪽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것이 마초의 발생, 로리타 컴플렉스, 포르노에의 집착, 교복 입은 여학생에 대한 취향 등등을 발생시키는 기저적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 끝에 저자는, 남성들은 자기혐오와 소외로 점철된 남성 섹슈얼리티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기 위하여 몇 가지 노력을 해야 한다고 권유한다. '불감증'을 '다정함'으로 바꿀 것, '내 몸은 더럽다'는 의식을 해소할 것, '엄청난 쾌감'이라는 환상에서 해방될 것 등등.

매우 흥미롭고 생생하며 설득력이 있는 전반부의 분석에 비하여 마지막에 제시된 이러한 대안은 상당히 미적지근하다. 내 느낌을 직설적으로 말해 버리자면, 저자가 제시한 대안적 남성은 한 마디로 이성애자 (페미니스트) 여성들이 갖는 남성 팬터지처럼 보인다. 이성애자 가부장 남성들에게 무의식적 욕망의 대상, 팬터지화된 female figure가 하는 기능과 정확히 똑같은 기능을 여성들에게 제공하는 그 어떤 male figure...

자기혐오로부터의 탈출구로 여성 대상을 필요로 하는 비루한 남자, 사정 뒤 자기 혐오에 가까운 추락을 경험하며 여자의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무정한 남자, 그런 빈약한 섹슈얼리티에 대한 보상으로 여자를 '만족시키는' 자신의 능력을 끊임없이 확인받고자 욕망하는 어리석은 남자가 아니라, 자기 신체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자기긍정을 기반으로 하여 여성과 성적 관계에 들어가며, 폭발적인 육체적 쾌락을 좇기보다는 섹슈얼 파트너로서의 여성과 '관계맺음' 그 자체를 즐길 줄 알고, 그런 관계적 실천을 위해 필요한 다정함의 자질 역시 풍부히 발달시키고 있는 그런 남자. 이건 정말 완벽한 이성애자 페미니스트 여성의 욕망 아닌가?

물론 내가 지나치게 씨니컬하게 보는 것일 수 있다. 또한 늘 그렇듯이, 대안이 미적지근하다고 해서 분석이 가치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책은 쉽고 재미있으며 학술적으로 provocative하기까지 하다. 우에노 치즈코가 감격하며 서평을 쓸 만도 하다. 다른 한편 저자의 분석은 여성 섹슈얼리티에 대한 페미니스트 분석이 참조할 만한 분석 방식 같아 보이는 점도 있다.

내가 보기에 이 책은 적어도 섹슈얼한 행동에 어떤 방식으로든 들어가 있는 남성이라면 자신의 파트너와 함께 읽고 토론해 볼 만한 책이며, 그의 여성 파트너들에게도 마찬가지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저자가 여자의 몸을 입은 독자들에게 직접 말을 걸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나는 이 마지막 포인트야말로 이 책의 아주 강력한 미덕이라고 본다. 만약 저자가 어줍잖게 여성 독자를 청중으로 삼아 '니네들이 잘 모르는 남자의 성을 알려주마' 방식으로 책을 썼다면 나는 가차없이 이 책을 '쓰레기'라고 불렀을 것이다. 철저하게 자기성찰적이면서 티끌만큼의 지배욕이나 권력욕도 보이지 않는 저자의 얄미우리만큼 철저한 정치적 올바름이야말로 이 책이 한국에서 이 책을 만난 페미니스트 여성 독자로서의 나에게 감명을 준 가장 큰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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