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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인] 건강가정기본법, 이대로는 안 된다
건강가정기본법, 이대로는 안 된다
이 재인(사회학 박사,
서울대 여성연구소 연구원, 서울대 강사)

  작년 연말 국회를 통과한 “건강가정기본법”이 내년 1월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다. 원만한 가족생활을 위한 정부지원을 의무화하고, 이를 뒷받침할 사업과 정책, 기구설립을 규정한 이 법률은 ‘가족의 위기’에 대한 국가 정책적 대응의 성격을 띤다. 현재 시행령을 만드는 한편, 각종 사업 프로그램의 시범운행에 들어간 이 법이 본격 시행되면, 전에 없던 여러 가지 가족지원 사업과 제도들이 새로 등장할 전망이다. 그러나 이 법은 다양한 이해주체들의 목소리를 폭넓게 담아내는 입법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해 법 시행을 몇 개월 앞둔 현 시점까지 분분한 이견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래 가지고야 법 시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국민적 공감대나 확보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가장 논란거리는 가족문제를 보는 이 법의 시각이다. 법에 명시된 각종 가족관련 개념의 정의 및 전체 문맥을 면밀히 검사해볼 때, 이 법에서 상정하는 가족은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가족’임에 틀림 없다. 가족개념을 이렇게 협소하게 잡으면, 그 밖의 가족형태들, 이를테면, 미혼모(부)가족, 독신가구, 부부가족, 동성애가족, 생활공동체가족 등은 마치 비정상적이거나 과도기적인 가족으로 간주되어 극복의 대상으로 부각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는다.  
  더 심각한 것은 가족문제를 해결하는 정책수단의 부적절함이다. 여러 사업과 정책이 있지만, 이 법률의 핵심은 ‘건강가정지원센터’를 설립하고 ‘건강가정사’를 양성하여 문제 있는 가정에 필요한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데 있다. 제도적인 모순 이전에 개인적인 능력이나 의지 부족 때문에 가족문제가 발생한다고 진단할 때 수긍이 가는 접근이다. 그러나 이 진단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나라 가족의 위기는, 사회 안전망이 불완전하여 가족구성원의 결핍의 해결이 가족에게 맡겨짐으로 해서 생기는 문제가 더 주종을 이룬다. 생계비관형 자살, 이혼고아, 현대판 고려장 같은 극단적인 사건들 뒤에는 늘 자립능력이 없는 가족성원을 가족에게만 떠맡겨온 우리나라 복지시스템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경제적, 정서적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제도적 보완을 제쳐두고, 상담이나 교육 등의 방법으로 가족해체를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 법률의 많은 조항들이 강제력 없는 선언적 문구로 채워져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며, 이 문제와 관련이 있다. 그런데도 이 법률은 가족지원 사업의 개발과 심의, 집행을 위해 국무총리실 산하의 ‘중앙건강가정정책위원회’를 비롯, 시·도 단위의 ‘건강가정위원회’, 시·군·구 단위의 ‘건강가정지원센터’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국가조직을 신설해 운영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실효성 있는 정책 대신 방대한 관료기구들 간의 탁상공론으로 국민의 혈세만 낭비할 소지가 다분하다.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제도적 보완을 제쳐둔 채 도모할 수 있는 정책수단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 법은 ‘건전한 가족문화의 개발’을 국가기관들의 의무로 규정하거나 “이혼숙려제도”를 도입하여 이혼선택의 최종판단을 법이 정한 제3자에게 위임하게 하는 등, 가족해체방지의 대의를 앞세워 국민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내용도 입안해 놓고 있다. 다양한  계층의 여성들이 일제히 반대에 나선 이유다.
  법이 시행되고 나면, 기왕에 신설된 기구들의 자기유지적인 관성으로 법 개정이 더 어려워질 것이다. 편견에 찬 독소조항들을 삭제하고, 국가기구의 규모를 대폭 축소하며, 가족 사업모델은 처음부터 다시 논의하는 전면적 개정을 해야 할 시점은 지금이다. 기왕의 안을 처음부터 재검토하는 수고가 적지 않겠지만, 가족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하고도 나 개인의 인생을 추구할 수 있는 행복한 나라에서 살기 위해라면 부담할 만한 가치가 있는 수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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